띠보 첫인상
여행을 하다보면 도시마다 에너지가 다르단 걸 느끼게 돼. 에너지란 표현을 다른 말로 바꿔도 상관 없어. 그 마을의 분위기, 첫인상, 지역색, 심지어 어떤 냄새라고 표현해도 좋아. 난 국경을 넘을 때, 도시와 도시를 이동할 때 약간 흥분된 느낌을 받곤하는데 뭐랄까- 지도에서 그림으로만 보던 경계를 내 몸으로 직접 부비는 느낌이 들어. 궁금증 또한 생겨. 어떤 구분으로 그 자리에 금이 그어졌고 사람들의 말씨가, 체구가, 표정이 바뀌는지 늘 신기해. 우리나라만 생각해봐도 그래. 막상 사는 사람들은 땅덩어리가 너무 작다고 말하지만 그 작은 땅안에서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고, 음식의 맛이 다르고, 사람들이 사는 방식도 다르잖아.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처럼 이런 생각에 끝엔 결국 자연을 보게 되는 것 같아. 그래서 난 사람들의 얼굴에서 또 도시의 분위기에서 이 지역의 귤은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게 돼.
띠보는 미얀마에 북동부에 위치한 샨주(shan state)에 속해있는 작은 마을이야. 북쪽은 거의 고산지대라 남부보다 날씨가 선선해. 내 방엔 에어컨이 있지만 한 번도 켠 적이 없어. 산이 많으니 당연히 자연경관도 좋아. 영국인들이 미얀마를 식민통치할 때 띠보와 멀지않은 ‘핀우린’을 휴양지로 개발한 것도 비슷한 이유일거야. 기차가 오후에 도착해서 2시간정도 마을을 산책했는데 정말로 편안했어. 어린시절 하굣길을 다시 걷는 느낌이랄까. 사람들도 그렇지만 공간자체에 다정한 느낌이었어. 어떤 가이드북에선 띠보를 ‘오지’라 표현하는데(나도 그 문구를 보고 오긴 했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려보여. 우선 오지라고 부르기에 접근성이 너무 좋아. 만달레이에서 기차 한 번이면 반나절만에 도착할 수 있고 핀우린만큼은 아니지만 마을인구의 반을 관광객으로 채울만큼 여행자로 북적이는 곳이야.
오늘 너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 기차에서 있었던 일이야.
만달레이에서 띠보로 올 때 ‘곡테일 다리’도 볼 만했지만 내게 더 흥미로웠던 건 열차가 띠보에 도착하기 10여분 전부터 일어났어.
이 시간이 되면 원래 느린 열차는 더 느려지는데 이때부터 창밖으로 열차 속도에 맞춰 달리는 사람들을 보게 돼. 처음엔 한 두명이었다가 곧 십여명으로 늘어나고 급기야 이들은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는데 너무 놀라서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했어. 처음에는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올라와서 하는 행동을 보니 이들 대부분은 게스트하우스와 뚝뚝이 호객꾼들이었어. 커다란 팻말에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적어 열차칸을 돌아다니거나 컬러프린팅 된 판플랫을 손님들에게 나눠줬어. 그들 중 분홍색 털모자를 쓰고 키는 작지만 덩치가 좋은 한 분이 친절하게 다가와 게스트하우스 판플랫 하나를 건냈는데 이름부터 범상치 않았어. ‘붉은용호텔(RedDragon hotel)’ 이름 아래로는 핫샤워, 에어컨, 와이파이같은 문구가 강조돼있었고.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사진 속 방이었는데 내가 만달레이에서 묵은 숙소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깨끗했어. 나는 그에게 “정말 이 방처럼 깨끗해?” 라고 물어보니 그는 “그럼 약속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데 목소리가 여자였어. 세상에! 자기가 일하는 게스트하우스를 홍보하기 위해 달리는 열차에 뛰어드는 여자라니. 난 그녀가 정말 멋있었고 무조건 믿고 따라가기로 마음먹었어. 그리고 지금 이 편지는 사진 속 그 방- 붉은용 호텔에서 쓰고 있어. 내일은 하루종일 목적지 없이 산책을 할 생각이야. 아 정해놓은 것도 있어.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다가 강을 봤는데 정말 예쁘더라고. 새벽에 가서 해가 뜨는 걸 보면 좋을 것 같아서 오늘은 일찍 잠들 예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