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편지

창문 하나

by 박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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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보에 계속 있는 게 맞는 걸까?
잘 모르겠어. 내가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건 맞아.
비록 옮긴 숙소가 이전만큼 깨끗하지 않고,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마냥 새로운 건 아니지만 난 여전히 이곳이 좋아. 그렇다면 남은 여행 기간 전부를 이곳에서 보내면 되는 건데 막상 '그렇게 하자!' 결정하고 나면 마음에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느껴져. 아이러니하지? 내가 띠보를 좋아하는 건 마음이 편한 까닭이 가장 큰데- 더 머물 생각에 불편해지니 말이야.
결국 머물거나, 떠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 단순한 결정 앞에서 수많은 생각이 뒤따라. 마치 수십 개의 인터넷 창을 띄워놓고 하나의 페이지도 제대로 로딩되지 않을 때처럼 머릿속이 버벅여. 이럴 땐 불필요한 창은 닫고 내가 원래 보려던 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게 말은 쉽지- 답답한 마음에 일단 나와서 걷다가 어떤 사원에 '대나무로 만든 불상'이 있다는 게 떠올라 거기로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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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원은 그동안 내가 미얀마에서 봐왔던 휘황찬란한 파고다와는 정반대였어. 사원이라기보단 스님들이 모여사는 작은 마을 같았고 그래서 띠보와 잘 어울렸어. 사원은 부분부분 보수공사 중이었는데 재밌게도 스님들이 직접 공사를 하셨어.
젊은 스님들은 주로 무거운 공사 장비를 옮겼고, 짬이 돼 보이는 스님은 시원한 그늘에서 느긋하게 페인트칠을 했어.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스님도 직접 목재를 옮기셨는데 몇 개 옮기고는 힘드신지 수돗가에서 목욕을 하셨어. 생각보다 물이 차가웠는지 막 어이쿠! 어이쿠! 하셨는데 솔직히 이 노스님을 포함해서 다른 스님들도 승복을 입고 있다뿐 동네에서 쉽게 마주칠 아저씨들 같았어.
사원의 건물도 자세히 보면 한 번에 조경됐다기보단 일단 건물 한 채를 세어 놓고 누군가가 "야 이 옆에 건물 하나 더 지어도 되지 않겠어?” 해서 지어진 것처럼 모양이 다른 건축물이 줄줄이 이어져 있어.(난 이런 식의 건물을 군대에서 본 적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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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허술한 상황을 하나의 표정으로 표현한다면 아마 이 얼굴일 거야. 수영아 이 부처님 얼굴 좀 봐봐. 너무 귀엽지 않아? 아마도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에 의해 채색된 게 아니라 이 절에서 가장 그림 잘 그리는 스님에 의해 칠해졌을 거야.
이 불상도 부처님이냐 묻는다면 난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할 거야. 예술이란 게 꼭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이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내가 칠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기에 이 불상은 나와 무척 가까운 부처님처럼 느껴지기도 해.


스님이 아닌 인부도 있었는데 둘은 모녀처럼 보였어. 엄마로 보이는 분이 시멘트 포대를 옮기고 딸이 그 시멘트를 물에 게는 작업을 했어. 난 그들에게 다가가 몸짓으로 "무겁지 않아?" 물으니 엄마는 이미 공사가 끝난 맞은편 건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어. 아마도 저 건물도 자기가 보수했다는 것 같았어. 내가 엄지손가락을 지켜 올리며 “굿”이라고 말하자 엄마는 부끄러운 듯 웃었어.
난 그들에게 '대나무 불상'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게 어디 있는지 물으니 그들은 다시 한번 자신들이 보수했다는 건물을 가리켰고 난 그 안으로 들어갔어.


사원은 조용했어.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없었는데 그래서 더 조용하게 느꼈던 것 같아.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창문 하나가 있었고 그 앞에 스님 한 분이 앉아 책을 읽고 계셨어.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 딱 하나의 생각만 남았어. '찍어야 돼!’
난 스님에게 다가가 최대한 별일 아니라는 듯 카메라를 보여주며 "혹시 네 사진 찍어도 돼?" 물으니 스님은 잠시 망설이다가 “오케이” 하셨어. 이렇게 허락까지 받고 나면 가슴이 얼마나 뛰는지 몰라. 내가 지금 좋은 사진을 찍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온몸에 퍼지면서, 내 몸에 모든 세포들이 일어나서 춤을 추는 것 같아. 보통은 예감으로 끝나지만 그래도 이 순간은 정말 좋아.(어쩌면 이 순간이 좋아서 계속 사진을 찍는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책 읽는 스님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
내가 쓸 수 있는 빛은 창가에서 들어오는 빛이 전부였고 그 빛은 고맙게도 스님 얼굴로 잘 번져있었어.
이 절엔 스님과 나 밖에 없었고 내가 움직일 때마다 목조 건물 바닥에선 오래된 나무 바닥이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났어. 삐거덕 소리가 난 뒤엔 카메라의 ‘찰칵’하는 소리가 한 음절처럼 이어졌고 그렇게 한 음절이 끝난 뒤엔 다시 조용해졌어.
삐거덕- 찰칵- ...-
삐거덕- 찰칵- …-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 이 소리도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절 안으로 다른 스님 무리가 몰려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촬영은 끝이 났어.
스님에게 다가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그도 똑같이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그가 합장을 해서 나도 따라 했어. 우린 마치 거울을 보듯 같은 행동을 취했어. 다른 스님의 사진은 찍지 않았어. 이 스님이면 충분하다 생각했고 어서 숙소로 돌아가 찍은 사진을 노트북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어.


밖으로 나오자 모녀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어. 내가 나오는 걸 보고 엄마는 아까 내가 했던 것처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굿?”이라 물었어. 그제서야 내가 불상은 보지 못하고 나왔단 걸 알았어. 잠깐 동안, 다시 올라가서 불상을 보고 와야 할까? 생각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그녀처럼 엄지를 지켜 세우며 “굿!"이라고 말했어. 그리고 그 순간 난 띠보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어.




*미얀마에서 쓴 답장은 연재가 종료될 때까지 매주 수요일에 올라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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