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편지

내가 띠보를 떠나는 이유

by 박원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짐들을 모아 가방을 꾸리고 나면 방은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의 모습과 비슷해져. 아이 키만 한 배낭을 보면서 '내가 저걸 메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싶다가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매 순간 가방의 무게를 느끼며 여행 하진 않았던 것 같아.
수영아 혹시 인도에서 만났던 집시 여행자 기억해?
우리가 게스트하우스 로비에 도착했을 때 우리 뒤로 다가와 이렇게 말했었잖아.
"지금 너네가 멘 배낭의 무게가 네 삶의 무게야.”
난 지금도 여행자들의 무거운 배낭을 볼 때면 그가 떠올라. 넌 그때 웃으면서 “정말? 내 삶이 이렇게 무겁다고?” 말했었고, 난 대답은 안 했지만 속으로 '이 정도면 들만하네.'라고 생각했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너와 있을 때보다 짐은 더 늘었지만 여전히 이 정도는 들 수 있어.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지고 있는 무게의 대부분은 과거의 기억이야. 앞으로 기억이 더 쌓일 테니 짐은 더 늘어나는 걸까? 아니면 더 많은 걸 잊으며 살 테니 가벼워지는 걸까? 지금의 난 그걸 알 수가 없어. 다만 내가 지금 지고 있는 게 무엇인지는 알고 있어.
가장 후회스러운 기억이 가장 무겁다고 친다면, 난 지금 바로 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어.
내가 마지막으로 단편영화를 찍은 건 3년 전이었어. 엄마가 아들의 잃어버린 구두를 찾으러 다니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였는데, 난 이 작품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처럼 작은 이야기가 모여 큰 울림을 주는 영화가 됐으면 했어. 엄마가 일상에서 만나는 세탁소 아저씨, 말 많은 동네 아줌마, 골목에서 무리를 지어 노는 아이들이 구두를 찾는 단서를 주고, 가을이란 계절이 내가 어릴 적부터 살던 동네의 구석구석에서 잘 드러났으면 했어. 아 그리고 이 영화엔 작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우리 엄마가 직접 출연하셨어. 다큐멘터리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 다른 배역 역시 실제 그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많이 섭외했어.


찍기 전엔 자신감이 넘쳤어. 스텝으로 일하며 잘한다는 얘기를 들어왔고 여기저기 부르는 곳도 많았어. “원진씨는 언제 본인 영화 찍을 거예요? 기대돼요." 같은 얘기를 한창 들을 때였지.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자신만만해서 내 작품이 잘 안되리란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던 것 같아. 그러지 않고선 감독과 촬영을 같이하겠단 계획 같은 건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땐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뭐든 가능하다고 믿었어.


하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고 나선 기대처럼 되지 않았어. 일반인 배우들은 통제가 안 됐고, 촬영과 감독을 같이 하는 나도 통제가 안 됐지. 왜 사람이 극단에 치달으면 전혀 본적 없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잖아. 그때가 나라는 사람의 밑바닥을 본 시기라 생각해. 좋은 형이자 오빠였던 난 어느 순간부터 스텝들에게 별일 아닌 일로 화를 냈고, 촬영을 하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려 그치지 못하기도 하고, 촬영장에 으레 나타나는 시비 거는 아저씨에게 그래 너 잘 만났다 하며 달려들어 싸우기도 했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냐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지. 너도 알다시피 학창시절 이후론 누구와 싸워본 적도 없고, 잘 웃고, 자주 즐겁고, 현장에 나가면 "원진씨는 어떻게 매일 에너지가 넘쳐요?”같은 말을 들었으니까. 어쨌든 그 모습도 나였어.

이 당시 가장 괴로웠던 기억 하나를 꼽으라면 집에 돌아와 그날 찍을 영상을 확인할 때인데, 한 씬의 끝에 “오케이!"를 외치는 내 목소리가 들리거든. 근데 이게 누가 봐도 오케이가 아닌 거야. 태어나서 영화란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봐도 고개를 저을 것 같은데 나는 오케이를 외치고 있는 거지. 하지만 누굴 탓하겠어. 분명 내 목소리인걸. 그리고 다음날이면 다시 현장에 나가 화내고 울고 싸우다가 오케이를 외쳤어.
그렇게 작업이 끝났어. 이 점은 참 인생과 닮았는데 엉망으로 살아도 끝은 나게 돼있더라고. 그렇게 전 작품을 같이한 감독님께 완성본을 보여드렸고 그녀의 코멘트는 간단했어. “야 처음부터 다시 찍어.”


"야 처음부터 다시 찍어.” 이 말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돼.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고 그래서 당연히 특별한 영화를 찍을 줄 알았어. 내가 사랑하는 감독들의 영화처럼 아름답고 마술 같고 때론 기괴해서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필름이 내 손에 의해 만들어질 거라 믿었어. 하지만 내가 찍은 건 평범했고 이 일을 하는 사람에게 평범하다는 건 존재할 이유가 없는 거니까.


사실 "야 처음부터 다시 찍어"는 내가 촬영장에서 스텝들에게 화를 낼 때, 서럽게 울 때, 모르는 아저씨 멱살을 잡았을 때 속으로 되뇌었던 말이기 해.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지. 핑계는 많아. 돈은 한참 전에 바닥났고, 스텝들에게 이미 진상이 됐고, 계절이 중요한 영화였고 등등등. 하지만 무엇보다 이 과정을 다시 한번 한다는 게 두려웠어. 촬영이 진행될수록 스스로 나라고 믿었던 존재는 깨져버렸고, 난 그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어. 지금이야 스스로를 '실패한 영화인'이라 부를 만큼의 여력은 있지만 그땐 그조차도 힘들었어.


그렇게 얼마 뒤 다른 영화에 스텝으로 들어갔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현장에만 가면 헛구역질이 나고, 멀쩡했던 피부가 뒤집어지고, 머리에 원형탈모가 와서 커다란 구멍이 여러 개 생겼어. 지금 생각해보면 내 몸이 반응했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것 같아. 영화가 내 것이 아니란 게, 다른 사람이 그 일을 잘하는 게 못 견디게 괴로웠던 것 같아.
그 뒤론 영화 쪽 일은 하지 않았어. 독립영화라는 틀을 벗어나니 촬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많았고, 통장에 찍힌 액수는 내가 영화를 못 찍은 대가를 받는듯했어. 하지만 어떤 날엔 마음이 정말 너무 아팠어. 뜬금없이 그런 날들이 찾아왔고 또 지나가고... 그리고 직감했지 아 난 앞으로도 계속 이 짐을 안고 살겠구나.


편한 걸로 따지만 지금 하는 촬영 일이 영화를 찍을 때보다 훨씬 나아. 성취감도 있어. 여전히 배울 게 많고. 하지만 이 일은 꼭 내가 아니어도 돼. 나로선 이게 가장 괴로운데 때때로 남이 해도 될 일을 내가 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 내가 찍은 영화처럼 말이야. 내가 이 먼 나라로 가이드북 하나 챙기지 않고 무작정 떠나온 건, 지금 이 자리에서 벗어나 보지 않으면 영원히 이 상태로 살 것 같았기 때문이야.
"야 처음부터 다시 찍어” 이 한 줄짜리 말은 내가 지고 사는 가장 무거운 짐이지만 나를 한자리에 가만있지 못하게 만드는 말이기도 해. 그때 바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사는 게 늘 정답을 맞출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네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 집시 여행자를 카페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한쪽 어깨로 메는 작은 가방을 들고 있었어. 맥그로드 간즈에 2년간 머물며 게스트하우스 스텝 일도 하고 거리공연도 한다고 했지. 지나고 나서 한 생각이지만 그의 짐이 가벼울 수 있었던 건 그가 한 곳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 가방을 싸는 건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서고 무엇인가를 넣는 건 언젠가 사용하기 위해서니까. 난 마음의 짐도 비슷하리라 생각해.

지금 내 가방에는 여러 벌의 옷과 카메라, 렌즈, 노트북, 사진을 백업하는 외장하드 두 개가 들어있어. 너에게 편지를 쓰는 노트와 필기구도 있고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스피드라이트와 혹시 필요할까봐 사온 배터리도 있어. 대부분 사진에 필요한 것들이야. 이것들로 내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난 그걸 알 수가 없어. 하지만 내가 진 짐은 날 움직이게 하고 또 언젠가 이 짐을 내려놓게 될 순간을 기대하기도 해. 그래서 띠보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가보려구. 여기는 새벽이고 내가 탈 버스는 내일 늦은 오후에 출발해. 그래도 오늘은 너에게 이 얘기를 털어놨으니 큰 짐을 덜어낸 느낌이 들어. 잘 자.




*미얀마에서 쓴 답장은 연재가 종료될 때까지 매주 수요일에 올라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열여섯 번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