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과 불행 사이
미치나로 가는 기차에서 수영에게.
우선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계신 부부를 소개하고 싶어. 두 분은 미치나에 사시고 아들이 한 명 있는데 외국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해. 두 분 다 말투와 인상에서 묻어나는 다정함이 있어. 부부는 혼자 덮을 만한 크기의 담요를 한 분은 오른쪽 다리, 한 분은 왼쪽 다리에 걸치고 계신데 아저씨는 됐다고 하는데도 아줌마가 계속 덮어 주셔. 무엇보다 내가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예쁜 미소를 가진 분들이야. 저 미소를 보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몰라. 사실 저분들이 덮고 있는 건 담요라 부르기엔 많이 두껍지만 너도 미얀마 기차를 탄다면 왜 저렇게까지 두꺼운 이불을 챙겨오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새벽엔 정말 추웠고 나도 다음 기차여행 땐 저런 이불을 하나 살까 생각 중이야.
전에도 말했듯 미얀마 열차는 아주 느려.
그래서인지 이 열차에 타고 있으면 내가 아주 느린 세상에 사는 것처럼 느껴져. 빠른 게 값진 세상에서 느려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걸 이 덜덜거리는 기차는 알려주는 것 같아. 그리고 그게 내겐 위안이 돼. 창문을 열고 달릴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어. 왜 바닷가나 숲길을 드라이브를 할 때 창문을 내려 숨도 깊이 쉬어보고, 손을 내밀어 바람도 만져보게 되잖아. 난 딱 그 정도의 속도로 미치나로 향하고 있어. 또 이렇게 앉아 네모난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진을 찍지 않아도 뷰 파인더에 눈을 붙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아.
그렇다고 내 마음이 마냥 편한 건 아니야. 만달레이까지 오는 버스 안에서 난 또다시 극장 꿈을 꿨고 옆 사람이 깜짝 놀라 날 깨울 만큼 크게 소리를 질렀어. 새삼 나라는 사람 하나 변하는 게 이렇게 힘든 거구나 싶어. 어쩌면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고. 어제는 스트레스가 많은 날이었고 아마 내 마음은 그런 순간이 오면 조건반사처럼 그 꿈을 상영하나 봐. 그러고 보면 그 꿈을 꿀 때마다 난 늘 극장이란 공간에 집중했지, 스크린에서 어떤 영화가 상영되는지는 보지 못했어. 다음에 다시 그 꿈을 꾼다면 이번엔 스크린을 보고 싶어. 뭐 다시 안 꾸는 게 가장 좋겠지만.
맞은편 부부는 커피부터 시작해서 과일, 과자, 빵까지 계속 뭔가를 주셔서 조금 전 점심시간엔 내가 두 분 도시락을 사다 드렸어. 정말 기뻐하시며 맛있게 드셨는데 난 그 얼굴을 보며 "아저씨는 걱정이 뭐예요?” 묻고 싶었지만 실례가 될 것 같아 말았어. 또 내가 말하고 싶은 ‘걱정'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지도 모르겠고. 아저씨는 열차가 정차한 동안 밖에 나가 팔뚝 크기만 한 '나무 모종’ 몇 개를 사 오셨어. 마당에 심으신다고 해. 내가 나무 이름을 묻자 아저씨는 영어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다가 열차가 어느 정도 달리자 창문을 가리키며 “저거야!” 외치셨고 그건 '야자나무'였어. 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아 아저씨네 집 마당은 엄청 크구나. 그리고 이만한 묘목이 시간이 지나면 저렇게 커지는구나.’ 왠지 그 묘목을 만지고 싶어서 손을 뻗어 뿌리 한 쪽을 쥐어보고 다시 창문 밖에 야자나무를 바라봤어. 내겐 이런 순간이 위로가 돼.
그렇게 몇 시간을 더 달려 ‘콜린’에 도착했는데 이상하게도 이 역에선 두 시간 넘게 정차했어. 보통 아무리 길어도 한 시간이거든. 정차 시간이 기니 난 나가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슬슬 사람들이 모여 수근 거리기 시작했어. 얼핏 들으니 어떤 여행자의 입에선 ‘사고'라는 말이 나왔고, 또 어떤 사람은 '누군가가 죽었다'라고 말했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자리로 돌아와 아저씨에게 여쭤보니 "앞에 가는 열차가 전복됐대요.”라고 알려주셨어. 난 놀라서 "사람이 죽었어요?” 물으니 "그건 모르겠어요. 하지만 넘어진 열차를 옮기고 선로를 수리할 때까지 우린 여기 있어야 돼요.”라고 덤덤히 얘기하셨어. 내가 “수리가 얼마나 걸리는데요?” 물으니 아저씨는 조금 전보단 심각한 표정으로 “그건 아무도 모르죠.”라고 대답했어.
사고 소식은 열차 끝에서 끝으로 빠르게 퍼졌고 그렇게 무기한 기다림이 시작됐어. 이 기다림을 대하는 방식은 미얀마인과 여행자들은 사뭇 달랐는데 미얀마인들은 조용히 자리를 앉아 있는 반면 서양 여행자들은 끼리끼리 모여 만달레이 룸!(술 마시며 노는 파티)을 외치며 술 파티를 시작했어. 하지만 파티는 오래가지 못했어.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했거든. 신이 났던 여행자들은 이제 역무원에게 찾아가 자신들의 여행 일정과 남은 비자 기간을 토로하며 어서 출발하던지 보상을 하라 요구했고, 이는 당연히 받아지지 않았어. 그들 중 한 무리는 기차 대신 버스를 타겠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됐어. 미얀마는 유명한 관광지를 제외하곤 지역을 이동할 때 경찰서나 관공서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거든. 게다가 버스 시간은 정해져 있고. 아무도 이렇게 오래 연착될지는 몰랐던 거지. 서서히 음악소리는 줄어들었고 술 취한 몇이 행패를 부렸지만 이 역시 가만히 두니 조용해졌어.
열차가 밤 9시에 출발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10시가 넘어서도 출발하지 않았고, 다시 한 번 11시에 출발한다는 소문이 돌았어. 난 아저씨께 "정말 11시에 출발할까요?" 물으니 아저씨는 씩 웃으며 "No.”라고 대답하셨어. 난 아저씨께 '근데 왜 그렇게 편안하셔요?' 묻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묻지 않았어. 이번엔 마땅한 단어가 생각나긴 했지만 사실 나도 마음이 급하진 않았거든.
예상치 못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린 보통 둘 중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잖아. 행운 혹은 불운.
만약 이 상황이 서울에서 일어났다면, 또 지금 이 시간이 출근길이라면 난 당연히 불운 쪽이었을 거야. 플랫폼은 사람으로 미어터졌을 테고, 그 안에 사람들은 서로를 밀치며 짜증을 냈을 거고, 이 상황은 한 줄로 요약되어 몇 분간 실시간 검색어에도 오르겠지. 촬영에 늦은 난 양쪽 어깨에 짐을 든 채 씩씩 거리며 아까 서양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택시나 버스 같은 다른 차편을 찾았을 테고. 하지만 여행자 신분인 나에게 이 순간은 불운이라기보단 경험으로 받아들여져. 그저 지금 이 시간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 열차는 느리다 못해 멈췄지만 난 여전히 여행 중이니까. 또 미치나에 늦게 도착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결국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행운과 불운을 가르는 건 어떤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인 것 같아. 또 그런 마음을 먹어도 괜찮은 주위 환경과 더 넓게는 사회의 분위기도 주요할 것 같고. 아저씨 말대로 11시가 넘어도 열차는 출발하지 않았고 얼마 뒤 다음 소문이 도착했어. 이 소문은 맞은편 아저씨가 직접 기차 차장을 찾아가 듣고 오셨어. 우선 앞서 간 열차는 물자를 나르는 열차라 인명 피해가 없진 않지만 적었고, 아직 선로 보수 공사는커녕 쓰러진 열차를 옮기지도 못해서 밤새 작업을 하면 내일 아침이 6시쯤엔 출발할 수 있을 거라고. 난 아저씨께 "정말 6시에 출발할까요?” 물으니 아저씨는 알면서 왜 또 묻냐 듯 “No”라고 대답하셨어.
12시가 되자 열차의 전등이 모두 꺼졌고 스마트폰이나 휴대용 플래시 불빛만 간간이 비췄어. 아직 파티가 끝나지 않은- 많아봐야 서너 명 정도의 소란과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 위로 밤의 고요한 공명이 추위와 함께 내려앉았어. 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옷들을 꺼내 겹쳐 입었는데 처음엔 등에서 땀이 났지만 땀이 마르자 옷을 입기 전처럼 다시 추워졌어. 아줌마는 옆에 빈자리로 자리를 옮겨 아침에 봤던 담요를 덮고 잠이 드셨고, 아저씨는 내 맞은편 의자에서 나와 비슷한 자세로 의자 두 개에 겨우 몸을 끼워 넣고 누우셨어. 아저씨는 쪼그리고 누워 있는 우리 꼴이 웃기신지 허허 웃으시며 “괜찮아?”물으셨고 난 “아니요”라고 대답하려다가 아저씨 웃는 얼굴을 보니 또 괜찮아져서 “네”라고 대답했어. 내가 첫 번째 소원으로 빈 저 미소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저씨도 이 상황이 마냥 좋진 않을 텐데- 아저씨가 누운 의자는 나만큼 불편하고, 나만큼 춥고,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퇴근 후엔 나무도 심어야 할 텐데. 그래서 이번엔 물어봤어. 아저씨가 잠들기 전에 대답을 듣고 싶어서. 지금까지 하려다 간 만 질문도 결국 이 물음인 것 같아서. 눈을 감고 있는 아저씨께 난 “행복해요?”라고 물었고 아저씨는 뭘 당연한 걸 묻냐 듯 “예스"라고 대답하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