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편지

손을 잡아주는 일

by 박원진



인도지로 가는 길에 예쁜 장면을 봐서 너에게 얘기하고 싶어. 수영아 넌 저 두 사람이 어떤 사이로 어떻게 보여? 동생과 오빠? 열차를 같이 탄 승객?
열차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남자는 나와 같은 칸에 탄 승객이고, 파란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역에서 구걸하는 애야. 그러니까 둘은 전혀 모르는 사이인 거지. 평범한 장면이지만 인도지로 가는 내내 저 순간이 마음에 남았어. 이곳엔 역마다 걸인들이 많아. 한국의 6~70년대 모습처럼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구걸을 해. 그걸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막상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여행자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난 저런 아이들에게 돈을 줘선 안된다는 쪽이야. 돈을 주는 게 복지의 한 방법이라 얘기하는 사람도 만나봤고, 조건 없이 주는 게 아름다운 일인 것도 알지만, 조금만 멀리 보면 저 아이들의 자립성을 완전히 없애는 길이거든. 한 지역에 한 세대를 망치는 방법이기도 하고. 저런 아이들은 유독 관광지에 많아. 그건 여행자인 나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단 뜻이기도 해.




저 사진 속 모습은 평범해. 아이는 열차에 오르기 위해 남자에게 손을 뻗었고,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아이의 손을 잡아줬어. 이 평범함 속엔 한 사회가 가진 따뜻한 체온이 있어. 돕는 것도 자연스럽고 도움을 받는 것도 자연스러운. 저 모습을 보며 한국에 있을 때 읽은 한 기사가 떠올랐어. 같은 동네에 살아도 임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고, 하교까지 다른 길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처음 읽었을 때의 섬찟함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그리고 난 진심으로 그게 한국의 평범한 일상이 되지 않길 바라.
저 아이가 열차 계단을 오르는 모습은 내겐 이전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손을 뻗어주는 것처럼 보이고 또 너와 나를 차별없이(그게 어떤 조건이든) 대하는 모습으로 보여. 그래서 네게 보여주고 싶었어.

인도지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어. 6시간 기차를 타고 다시 트럭 화물칸으로 옮겨 타서 두 시간 동안 산 하나를 넘고, 산 아래 지역 경찰서에 들러 '지역 입장 허가증'도 받아야 했어. 그렇게 인도지에 도착하면 정확히 한 게스트 앞에 세워줘. 거짓말 같지만 인도지엔(인도지는 미얀마에서 가장 넓은 호수야) 여행자 숙소가 하나밖에 없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 2인 1실을 써야 돼. 내가 싱글룸을 달라고 하자 주인은 “여긴 그런 건 없어.”라고 했어. 방은 대략 여섯 개 정도 되는데 화장실은 하나고 수세식이야. 다행히 샤워실이 있지만 샤워기 대신 바가지를 사용하고, 온수는 전기포트로 물을 데워서 큰 대야에 풀어써야 해. 어때? 너도 자연스럽게 군대가 떠오르지? 이번 여행에서 나름 최악의 환경인데 난 이 모든 걸 이미 군대에서 경험했다는 게 놀랍고 한 편으론 씁쓸해.


하지만 막상 호수로 나가면 이 모든 환경이 용서돼. 아니 용서되는 걸 넘어 여기서 며칠 머물 수 있다는 게 축복처럼 느껴져. 오늘은 두 시간 정도 산책을 했는데 여기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이야. 바쁠 게 없는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 다니고, 그보다 느린 소와 돼지가 풀밭 위를 어슬렁 거려. 심지어 이곳엔 울타리도 없어. 숙소 앞으론 1차선 도로가 있는데 차보단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주로 다녀. 그리고 이 모든 장면 뒤로는 아주 큰 강 있어. 강가에 앉아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동네가 가진 시간의 흐름이 느껴져. 그리고 내 마음도 자연스럽게 그 흐름을 맞춰가게 돼. 숨도 천천히 쉬게 되고. 전에 이야기한 내 마음속 여백도 이 정도의 속도로 시간이 흐르면 좋겠다 싶어서 이 순간을 더 잘 기억하 노력했어.

오늘은 강을 바라보기만 했지만 내일은 직접 배를 타고 나가. 강 중간으로 가면 절이 하나 있다고 해. 정말로 물 위에 떠있는 절이래.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는데 내일은 진짜 그곳에 가보게 됐어. 다녀와서 다시 편지를 쓸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스물아홉 번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