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신발을 벗고 들어오세요

by 박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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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지.” 스스로에게 이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이 무척 좋아하던 일, 꿈이나 목표라 부르던 것에 실패한 뒤엔 더욱 그렇다. 나는 영화감독을 꿈꾸다가 포기한 뒤, 한동안 그것을 내 인생의 오점이라 여겼다. 그 시기에 미얀마로 여행을 떠났고, 스스로를 실패한 영화인이라 칭하며 더 이상 나아갈 ‘앞’이 없음을 토로하는 글을 자주 적었다.

그러나ᅠ앞이 보이지 않던 일상과 다르게, 여행 중에는 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따로 정해놓은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앞에 보이는 길을 따라 걷고 사람들을 만나 사진 찍는 게 하루 일과였다. 이 책에 미얀마의 유명한 관광지보다 현지인들이 사는 평범한 마을이 더 많이 나오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미얀마인들과 말은 거의 통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말이 아닌, 다른 방식의 의사소통에 예민해졌다. 그들의 표정과 눈빛, 몸짓은 다정했다. 특히 따뜻한 미소는 내게 큰 위로가 됐다.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며 생각했다.

‘나는 왜 이들처럼 웃을 수 없을까?’

이 질문을 시작으로 나의 얼굴, 나의 행복을 돌아보았다. 특히 ‘실패’라 단정 지은 과거를 다시 바라보며, 타인의 위로가 아닌 스스로 위로하는 방법을 찾아나갔다. 이 책에 실린 30통의 편지에는 그러한 변화 과정이 담겨 있다.


미얀마는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 비해 국내에는 아직 덜 알려진 여행지다.ᅠ누군가에게는 미지의 나라고, ‘버마’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이도 있을 것이다. 미얀마의 아름다운 풍경, 순수한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데 내 글과 사진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올해 초 1차 원고를 마치고 미얀마를 다시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 미얀마에 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ᅠ한 분야에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 전체에서 실패한 것이 아님을 안다. 그러기에 이 책 속의 여정이, 힘들었던 시기를 돌아보며 찍는 마침표처럼 느껴진다.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는 모든 사원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어야 한다. 사원 입구에 놓인 다양한 신발을 보며 주인을 추측하는 일은 여행의 작은 즐거움이었다. 신발을 벗을 때의 느낌도 좋았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내가 발 딛고 살아온 세상에서 살짝 벗어나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이 책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에게도 그런 기쁨이 전해지면 좋겠다.


‘브런치(글쓰기 플랫폼)’ 연재가 인연이 되어 출판까지 하는 행운을 얻었다. 도서출판 오르골에서 출판을 준비하며 거칠었던 원고는 한결 정돈됐다. 정말로 감사드린다. 원고를 쓰는 동안 도와준 이들이 있다. 연재할 때 항상 제일 먼저 읽고 피드백을 해준 지원, 힘들다고 투정 부릴 때마다 같이 있어 준 도현과 은석에게 고맙다. 또 이 책을 멋지게 디자인해 준 윤선,ᅠ좋은 책을 많이 선물해 준 은이 누나, 촬영 장비를 빌려주신 강인선 감독님, 같이 공부했던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도 감사하다. 늘 나아갈 앞이 있음을 알려주는 지선 씨, 만달레이에서 도움을 준 예림 씨와 미얀마에서 만난 모든 인연에게 고맙다.

끝으로, 사랑하는 가족들… 내가 무엇을 하든 믿고 기다려주시는ᅠ어머니와 누나, 무엇보다 마음이 아프신 아버지께 이 책이 위로가 됐으면 한다.


2019년 4월

박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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