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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진 Dec 06. 2020

조르바의 춤과 'Another Day of Sun'

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

코로나 19 이후 중계 촬영이 많아졌다. 주로 기업의 CEO 세미나, 인재개발팀에서 하는 강연을 중계하는 일이다. 대기업일수록 TV에서 볼 법한 유명한 강사를 섭외하기에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이런 강연 듣는 걸 워낙 좋아해서 일하는 중간중간 메모를 하고, 집에 와 일기장에 정리한다.


3달간 여러 강사를 만나며 강연에도 트렌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최근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미국 대선’, ‘컬래버레이션 문화’ 그리고 ‘BTS’다. 거의 모든 강연자가 ‘BTS’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심리, 경제, 융합 등등 각자 전공 분야 맞춰 한 아이돌 그룹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분석한다. 듣다 보면 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같지만 그래도 꽤 그럴싸한 분석이 많다. 의아한 건 내가 만나본 강연자 중 누구도 어떤 멤버를 좋아한다거나, 어떤 곡을 주로 듣는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 아마도 그들은 'BTS'가 어떻게 성공했는진 알지만, 좋아하진 않는 듯 했다.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

또 다른 일화가 있다. 케이블 방송을 보는데, 이 역시 강연 프로였다. 나이 지긋한 교수님이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리스인 조르바'를 텍스트로 인용했다.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조르바가 바닷가에서 춤추는 장면을 예로 들며 '자유의 경지'에 대해 말했던 것 같다. 조르바는 나도 무척 좋아하는 캐릭터라 흥미있었고 강연도 순조로왔다. 패널 중 한 명이 "그러면 교수님도 조르바처럼 춤 한 번 보여주세요." 말하기 전까진. 안타깝게도 그는 춤을 추지 못했다. 노교수님은 경직된 채 한참 동안 멀뚱히 서 계셨다. 그는 자유에 대해 잘 알지만, 누리진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여자 친구와 예술의 전당 주변을 산책하고 '음악 분수' 앞에 앉아 쉬었다. 분수 쪽엔 어린아이 둘이 춤을 추고 있었는데, 한 명이 춤을 추면 다른 한 명은 스마트폰으로 그 모습을 찍어줬다. 둘은 지치지도 않고 찍고 찍히고를 반복했다. 우리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멀찌감치 앉아 아이들 사진을 찍었다. 그때쯤 한 곡이 끝났고 분수도 멈췄다. 마지막곡이었나 아쉬워하는 찰나, 라라랜드의 'Another Day of Sun’ 전주가 흘러나왔다.

'딴딴따다 딴따라 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 곡의 전주가 얼마나 예쁘고 흥겨운지. 분위기에 맞춰 분수는 여러 색깔의 조명을 받으며 뿜어져 나왔다. 아이들은 더 신나 몸을 흔들었고 음악 탓인지, 아이들 탓인지 뒤에 앉아있던 어른 몇몇도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역시 춤을 추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왜지? 내 몸인데 왜 내가 움직이질 못하지?' 내면에선 라이언 고슬링마냥 유려한 스텝을 밟고 있었지만, 현실 속 나는 경직된 채 어깨만 겨우 쭈뼛거릴 뿐이었다. 단단하고 두꺼운 무엇이 춤추고 싶어 하는 나를 내리누르는 것만 같았다.


단단하고 두꺼운 무엇

그것은 분명 '자의식'일 거다. 내가 나를 지켜보는 의식. 수십 년간의 삶을 고이고이 축적하여 내가 누구고,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정의 내린 의식 말이다. 아쉽게도 이 의식 안엔 '춤추는 나'는 없고, '춤 못 추는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만 있었다.  

기억하기로 조르바는 기쁠 때도 춤을 췄고, 밥 먹고, 술 마시고, 섹스를 하고 난 후에도 춤을 췄다. 그는 3살짜리 아들이 죽었을 때도 시체 앞에서 춤을 췄다. 그런 조르바를 보고 사람들은 '조르바가 미쳐버렸다!' 외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온몸으로 슬픔을 표현했고, 그게 춤이란 형태로 나온 것뿐이었다. 지금 내가 글로 이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옷을 갈아입었다. 일기를 썼다. 그러다가 문득 '그래 추자!' 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처음엔 '우와 진짜 못 추는구나'싶어 민망했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민망해하는 게 꼴사나웠지만 덕분에 '나한테 관심 있는 건 나밖에 없다' 는 걸 다시금 깨달으며 열심히 몸을 흔들었다. 아까 내면에서 하던 스텝도 밟아보고, 아이들이 췄던 춤도 따라 해 봤다. 그러다가 조르바처럼 뭔가를 표현해보자 싶어서, 조금 전 일기를 쓴 것처럼 오늘 있었던 일을 몸으로 표현했다. 만둣국을 먹었고, 대성사에 갔고, 큰 불상을 본 후 음악 분수에 갔는데... 그렇게 계속 몸을 움직이다 보니 어느 순간 자의식이 잠깐 꺼지는 게 느껴졌다. 그건 그냥 내가 '춤을 추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였다. 그렇게 몇 번 켜졌다가 꺼지고를 반복하다가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생각했다. 어쩌면 그 노교수님도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다가, TV를 보다가, 서재에 앉아있다가 문득 춤을 추셨을지도 모르겠다고. 왜냐하면 우리 둘 모두 조르바를 좋아하니까. 좋아하기에 조르바가 말한 자유를 몸으로 체험하고 싶으니까. 머리로만 아는 삶의 헛헛함을 아니까 말이다.

   

이 글을 쓴 이후 난 일주일에 한두 번 방구석 댄서가 된다. 또한 이 원고를 마감하며 모든 문장을 몸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거쳤다. 언젠가 음악 분수 앞에서 'Another Day of Sun’을 다시 듣는 날, 내 몸이 부디 마음껏 움직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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