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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진 Dec 03. 2020

꾸준히 쓰기 위해서

하나

같이 일하는 동생이 주식을 시작했다. 만나면 대화의 반 이상이 주식 얘기고, 심지어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스마트폰으로 주식 차트를 확인한다. 동생은 말했다.

"형도 이제 시작해야 해요. 우리 이거(촬영 일)해선 절대 집 못 사요." 또 이런 말도 했다.

"삼성 같은 주식을 딱 1000만 원만 사서 1년이고 2년이고 묵혀 두세요. 지금이 기회예요. "


맞는 말이었다. 앞으로 이 일을 10년 더 한다 해도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을까. 현실 직시는 늘 쓰리다. 하지만 내 마음을 더 찌른 건 '기회'라는 단어였다. 뜬금없게도 난 그 말에서 '글쓰기'를 떠올렸다.

작년 나는 첫 책을 냈다. 그러니까 진짜 작가가 된 거다. 인세를 받았고, 예술인 등록도 했으며, 출판 시기에 맞춰 사진전도 열었다. 교보문고에 가서 책과 함께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려도 봤고, 오픈 마켓에 참여해 직접 책을 팔기도 했다. 책은 어느 정도 팔렸다. 딱 거기까지였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그게 뭔가를 해주지 않았다.


'어중간하다'

내 삶을 요약하면 이렇다. 기분이 썩 좋진 않지만 근 몇 주간 열심히 내 '주제 파악'을 해본 결과 이는 사실이다. 나는 어중간하다. 우선 돈을 버는 일에서. 나는 프리랜서 9년 차로 영상과 사진 촬영을 한다. 메이저 촬영 기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싼마이도 아니다. 꾸준히 나를 찾는 업체가 있기에, 밥은 먹고 살 수 있다. 하지만 '꼭 당신 이어야 해!' 하는 곳은 없다. 평균은 뽑아내지만(난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은 없다. 가끔 내가 일하는 게 '128 kbps MP3 파일' 같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잡음이 안 들리는 정도. 더 위로 '320 kbps'도 있고, ‘무손실 파일'도 있지만 자세히 듣지 않으면 별 차이가 안나는, 딱 그 정도 말이다. 물론 평균을 해내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떤 일에 있어(특히 예술에서) 평범하다는 건 가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가로서의 경력도 마찬가지다. 동생이 말한 '기회'가 '글을 쓸 기회'로 들린 건 요즘 들어 하루에도 수십 번 '지금 써야 해.' 마음속에서 외치기 때문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오세요'를 출간할 수 있었던 건 첫째로 운이 좋아서였고, 두 번째는' 서간문'이라는 형식 덕분이었다. 만약 내 원고가 일반 산문이었다면, 출판사 눈에 띄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형식이 중요한 책이었다. '편지'란 형식을 취한 이유는 책의 에필로그에도 적었지만, 그게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이었기 때문이었다. 산문으로는 부족한 글솜씨에 나름의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문제는 '현재'에 있다. 이제 다음 글을 써야 하는데 쓰는 글마다 별로였다. 내가 읽어서 좋지 않은 건 남도 좋지 않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또 두리번거린 게 '형식'이었다. 몇 가지 소개하자면 '단어' 하나를 선정해 거기에 맞춰 여행기를 쓴다던지, 내가 좋아하는 책의 문구를 뽑아 사진과 엮는다던지. 소개하기도 민망한 몇 가지가 더 있으나 각설하고, 어느 순간 이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 까닭은, 내가 평범한 산문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란 걸 인정하게 됐다.


이걸 인정한 시기쯤 나는 인스타그램에 일주일에 5장씩 사진 올리는 일을 시작했다.
 "자기만 보고 좋아하는 게 무슨 작업이에요."라고 말한 친구 작가의 말이 귓가에 맴돈 탓도 있고, 앞으로 계속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내 작업을 꾸준히 알릴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좋은 사진도 올렸고, 별로인 사진도 올렸다. 숫자를 채우기 위해 이 일을 한다는 게 내키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했다. 어찌 보면 인스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행 사진 중 하나였지만, 그 뻔한 것도 계속 쌓다 보니 맥락이 생겼고, 그 맥락은 뻔하지 않다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됐다. 무엇보다 사진 한 장을 올릴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한다. 이 사진은 왜 좋은지, 왜 구린지, 다음엔 어떻게 찍어야 할지. 일주일 5번은 이 고민을 하면서 어중간한 내 좌표가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만약 글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 일단 써서 올려 보자고. 좋건 나쁘건, 뻔하건 뻔하지 않건 간에.


계산을 했다. 매주 5편씩 쓴다면, 1년은 52~53주니까 대략 260편이 나왔다. 260, 뭔가 딱 떨어지는 맛이 없다. 4도 곱해보고, 3도 곱해봤는데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그 정도 양을 쓸 자신도 없었다. 전업 작가라면 모를까, 일주일에 5편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편한 숫자를 생각해봤다. 1달에 1편이면 마음이 몹시 편했다. 하지만 이건 어중간한 내 삶을 1년으로 늘여 놓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시금 이걸 왜 하려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꾸준히 쓰기 위해서. 산문이 글쓰기의 기본이기에. 그래서 1년 동안 100편으로 정했다. 적당히 압박감도 들면서 또 아예 못할 숫자는 아니었다. 어쨌든 이 정도면 어중간한 내 삶을 10배쯤 열심히 사는 거니까. 동생이 삼성 주식에 1년간 돈을 묵혀두는 동안, 난 이 기회를 잡아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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