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
어머니는 지방에 인테리어 아뜰리에 대표이다. 체계적인 교육도, 전문적인 지식을 오랜 시간 동안 배운건 아니지만, 대학교에서 4년을 공부한 내가 봐도 나보다 디자인 감각과 능력은 훨씬 뛰어났다. 그리고 마감한 현장을 보면 렌더링을 한 이미지 그 이상의 결과물을 나타낸다. 아마도 꼼꼼하고 예민한 성격이 완벽한 마감 현장을 만들었는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전공 서적에 나온 내용을 본 적이 없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계시지?"란 의문을 항상 품고 살았다.
그러다가 몇개월 전부터 어머니 사무실을 들락날락하는 고양이가 있었다. 당시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안된다는 것에 대해서 잘 몰라서 무시하면 안될 거 같았다. 그래서 올 때마다 성심성의껏 밥을 줬다. 어느 평범한 길고양이처럼 올 때마다 항상 밥을 달라고 하고 밥을 주면 금방 가버렸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정이 들었는지 어머니의 손을 할퀴었던 첫 만남과 달리 이젠 만져도 아무 저항이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그 길고양이한테 얼굴에 큰 흉터가 생겼다. 아마도 야생에서 다른 동물들과 싸운 거 같아 보였다. 어머니는 상처를 본 순간부터 걱정을 하시더니 결국 사비를 털어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갔고, 치료를 위해 사무실에서 길 고양이가 사용할 사료와 머무를 집을 사서 갖다 놨다. 많은 돈이 들었지만 어머니는 당장의 돈보단 고양이의 건강이 우선이었던것 같다.
사실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상황을 더 심각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그게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런 예민한 성격이 디자인 능력에 분명히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예민하다는 것은 남들보다 상황을 더욱 깊게 시뮬레이션 하고 공감한다. 마치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담하고 사고하는 행위와 일맥상통하다. 그런 사고 과정과 부수적인 행위들이 결합하면 고객이 원하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어머니는 아마 유전적인 이런 성격과 20년이 넘는 인테리어 경력이 합쳐져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계신 것 같다. 한 분야에 5년을 넘기기도 힘든 상황인데 어머니가 아직까지 굳건한 것을 보면 남들보다 예민한 성격과 덕분인 것 같다
후일담으로, 이 고양이는 아마 사무실에서 키울 예정이다. 집엔 이미 키우는 강아지가 있지만, 사람들이 항상 상주하는 사무실에서 기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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