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기 전, 감정은 이미 지쳐 있었다
무너졌다는 건,
사실 이미 여러 번의 신호를 지나쳤다는 뜻이더라고요.
어릴 땐 “형이니까”라는 말이 자주 들렸어요.
그 말 안엔 늘 책임이 따라붙었고,
그 책임은 감정을 숨기는 걸 당연하게 만들었죠.
저는 괜찮은 척을 먼저 배웠어요.
정확히 말하면, 배운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했던 거죠.
지금 돌아보면
무너졌던 그날 이전에도
감정은 참 많이, 조용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어요.
말이 잘 안 나올 때,
잠을 자도 쉰 것 같지 않을 때,
별일 없는 날에도 이유 없이 멍해질 때,
어디 아픈 것도 아닌데 계속 피곤할 때.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 신호였어요.
감정이 말로 표현되지 않으면
몸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해요.
표정이 굳고, 말수가 줄고,
사람 만나는 게 점점 피곤해지죠.
그러면서 조용히, 계속 경고를 보냅니다.
근데 저는 그걸 자꾸 무시했어요.
“별일 아니겠지.”
“다들 이 정도는 버티고 사는 거 아냐?”
“형이면 참아야지.”
하나하나, 스스로를 설득하며 넘어갔죠.
아니, 넘겼다기보단… 외면했어요.
그리고
그 외면이 쌓일수록
감정은 더 깊은 데로 잠겨갔어요.
결국 어느 순간,
진짜 무너지고 나서야
그 모든 신호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알아요.
감정은 무너지기 전에 반드시 신호를 보낸다는 걸요.
그걸 듣지 않으면
몸이 대신 이야기하려 하고,
몸의 목소리마저 듣지 못하면
사람을 밀어내기 시작해요.
세상이 흐릿해지고,
관계가 멀어지고,
혼자 있는 게 편해져 버리는 거죠.
저는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요.
무너졌던 그날은
그날 하루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이미
많은 신호를 지나쳐 온
아주 긴 시간의 끝이었다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