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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여친의 관계는 막걸리

말보다 오래 남는 감정들

by 행복한곰돌이

처음엔

우리가 잘 맞는 줄 알았어.

뭐든 척척,

서로 말 안 해도 알 것 같고.

그러니까 그때는 웃기만 했지.


근데 가끔 생각해.

그건 정말 “잘 맞은” 게 아니라,

그냥 서로 “말을 안 한” 거였을지도.


표면만 맑았던 우리,

그 아래 가라앉은 것들은

계속 쌓이고 있었는데

우린 그걸 외면한 채 마시고 있었거든.



어느 날은,

내가 더 많이 기대고 있었단 걸 알아챘어.

조금만 멀어져도

내가 더 허전했고,

조금만 말투가 달라도

내가 더 흔들렸어.


근데 그 얘길 꺼내기가 어려웠어.

“나만 이런가?”

“이런 말, 무거운가?”

그런 생각이 자꾸 앞섰거든.


그래서

서운하단 말도 못 하고,

보고 싶단 말도 삼키고,

그냥 괜찮은 척했어.

그게 어른스러운 사랑인 줄 알았거든.



근데 그건

사랑이 아니라 회피였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됐어.


감정은 말로만 해결되지 않지만

말이 없으면 더 멀어지더라.

마음에너지가 고여버리고,

회로는 끊기고 말았어.


그래서 우리 사이가

조용한데 자꾸 멀었나 봐.



막걸리는

섞어야 진짜 맛이 나.

표면만 떠서 마시면

그건 반쪽짜리 맛이야.


우리도 그랬던 것 같아.

부드럽고 웃기만 했던 시절은

사실 반쪽짜리였는지도 몰라.


지금은 좀 더 탁하고,

말도 많아지고,

표정도 자주 흔들리지만

그래도 이게 우리 사이의 ‘진짜 맛’ 같아.



여전히 혼자 애쓰는 날이 있고,

말하지 못한 채 잠드는 밤도 있지만,

이젠 그 감정을 꺼내는 게

두렵기만 하진 않아.


사랑은 웃기만 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우리 둘 다

이제는 조금씩 배우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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