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윗머리가 얇아졌어요”
비 오는 날이었다.
습기로 눅눅한 공기 속에서
내 머리는 이상하게도 뜨거웠다.
두피가 달아오르는 느낌.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며칠 전 미용실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윗머리가 좀 얇아졌어요.”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나는 모르게 열을 품고 있었던 걸까.
화를 내고 있었구나.
말로는 하지 못했지만,
마음 안에서는 분명히 무언가 끓고 있었다.
“왜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지?”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정말 괜찮았을까?”
“불공평해.”
그 말을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혼자 속으로 꺼내봤다.
화를 참는 게 아니라
말 없는 분노를 조용히 흘려보내는 시간이었다.
그러자 머리의 열이 조금씩 빠지는 게 느껴졌다.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걸
억지로 이겨내려 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감정은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하니까.
나는 지금
화를 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게,
나도 상처 입지 않게,
조용히 나를 통과하는 방식으로.
언젠가 다시
굵어진 머리카락을 만질 수 있기를,
마음도 함께 자라날 수 있기를
그렇게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