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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숙이는 걸 친절이라 믿게 되었을까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시녀’처럼 보이는 이유에 대하여

by 행복한곰돌이

음식을 주문하고, 물을 받는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고개를 숙인다.

감사 인사를 받는 건 나인데, 왜 자꾸 미안해지는 걸까.


한국의 식당, 카페, 병원까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이 어딘가 ‘몸을 낮춘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말투는 지나치게 공손하다.

이건 정말 ‘친절’일까?


나는 이 태도를 볼 때마다, 자꾸 ‘시녀’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무례해서가 아니라, 너무 과해서.

너무 조심스럽고, 너무 위축돼 있어서.


왜 우리는 손님을 ‘왕’처럼 대해야 한다고 배웠을까.

정말 왕이 되길 원하는 손님이 있을까.

그저 편안하고 따뜻한 연결이면 되는 건데.


아마 이건 오래된 습관일 것이다.

유교 문화가 남긴 위계.

‘손님은 윗사람, 종업원은 아랫사람’이라는 인식.

그리고 그 인식은 지금까지도 많은 공간에서 작동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게 감정노동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됐다는 것이다.

점원은 친절을 넘어서, ‘굴복’에 가까운 태도를 연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컴플레인을 받는다.

그러면 사장이 화를 낸다.

“요즘 알바는 서비스 마인드가 없다”고 말하며.


그 속에서 친절은 자꾸 오해된다.

“숙이는 게 예의지.”

“허리 안 굽히면 무성의해 보이잖아.”

그 말 뒤에는 이런 전제가 숨어 있다.

“을은 그렇게 해야 해.”


하지만 진짜 좋은 서비스는, 그렇게 생기지 않는다.

나는 요즘 외국 식당을 보면 오히려 부럽다.

그들은 손님을 대할 때 당당하다.

동등한 존재로서 존중을 주고받는다.


나는,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건넬 때,

허리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꿈꾼다.


친절은 숙임이 아니라, 연결이다.

그걸 알고 나면, 괜히 미안해지지 않아도 된다.

나도 누군가의 하루를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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