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럴까?“에서 “그래서 뭘 할까”로
1. 감정을 해석하느라 지친 날들
기분이 이상할 때마다 나는 자주 되뇌었다.
“왜 이렇게 짜증나지?”, “왜 또 이런 감정이 들지?”
이 질문은 처음엔 나를 도와주는 줄 알았다.
내 마음을 이해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도 감정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졌다.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2. 감정은 분석이 아니라 신호였다
그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감정은 ‘이유’가 아니라 ‘신호’일 뿐이라는 걸.
감정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내 상태를 알려주는 안내등 같은 것이다.
깜빡이는 그 불빛 앞에서
나는 괜히 고장난 회로처럼
이유만 캐묻고 있었던 거다.
“왜 이래?”라고 묻는 순간,
나는 내 감정을 낯설고 불편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3. 그래서 지금,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진짜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었다.
이 감정을 기준으로, 나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짜증이 나면
왜 짜증나는지 분석하는 대신
“지금 이건 안 할래”라고 말해보았다.
무기력할 때는
이유를 파고들기보다
“오늘은 나한테 쉼이 필요해”라고 결정해보았다.
신기하게도
그 순간부터
감정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몸이 다시 움직이고,
생각이 조용해졌다.
4. 선택이 감정을 이끌어줄 때
감정을 이기려는 게 아니라,
감정 위에 올라타서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감정에 맞는 선택은 언제든 내가 할 수 있다.
“왜 이래?”는 나를 감정의 손님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래서 지금 나는 뭘 할까?”는
나를 다시 내 삶의 주인으로 돌려놓는다.
5. 스스로에게 주도권을 되돌려주는 말
이젠 그렇게 말하려 한다.
“짜증나.
그래서 지금은 안 할래.”
“지금은 이런 기분이야.
그러니까 오늘은 이렇게 살아볼게.”
감정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 감정 안에서 나를 선택하는 방식이 어색했을 뿐이었다.
지금 이 말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