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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역할이 바뀌는 걸 느끼는 순간

by 행복한곰돌이

아버지가 늙어간다.

그걸 처음 느낀 건,

같은 말을 세 번쯤 반복하실 때였다.


예전엔 그런 적 없었다.

말수가 적었고, 무게감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같은 얘기를 돌려 말하시고,

가끔은 내가 듣고 있는지도 모르신다.


처음엔 짜증이 났다.

왜 자꾸 말이 길어질까.

왜 내 기분을 몰라줄까.

근데 문득

그게 어릴 때 내 모습이었단 걸 기억했다.


나도 자꾸 물어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걸 받아준 사람이 아버지였다.


이제 역할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아버지를 챙기고,

기분을 살피고,

가끔은 말끝을 다 듣지 않고도 알아듣는다.


어쩐지

자식을 키우는 기분이다.


조금씩 몸이 굼떠지고,

소화가 안 되는 걸 말씀하시고,

단맛을 찾으시고,

추위를 탄다.


그럴 때마다

어른이 된다는 게,

누군가를 다시 품는 일이라는 걸 느낀다.


그 품은 예전과 다르다.

이젠 내가 품이 되고 있다.


말없이 순번이 바뀌는 시절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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