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집은 나를 불편하게 했어요.
그런데 그 불편함을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었어요.
늘 내 탓 같았고, 내가 부족해서 부모가 힘든 거라 믿었거든요.
나는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어요.
친구들과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늘 “내가 잘못한 게 뭘까”를 계산했어요.
부모 앞에서는 더 조심했고, 눈치를 읽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었어요.
그게 내겐 너무 자연스러워서 이상하다고 생각조차 못 했어요.
이제 와서 알았어요.
문제는 나에게 있던 게 아니라,
부모가 가진 낮은 자존감과 불안이 나를 덮치고 있었던 거라는 걸요.
엄마는 통제로, 아빠는 회피로, 집은 늘 어지러웠는데
나는 그걸 ‘정상’이라 여겼어요.
다른 기준을 배울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결국 나는 문제를 몰랐던 게 아니라
문제를 볼 수 없도록 길들여져 있었던 거예요.
나를 탓하게 만드는 방식 속에 오래 갇혀 있었던 거죠.
이제는 달라요.
알아차렸다는 건 이미 벗어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몰랐던 시절의 나를 원망하기보다,
그저 그 시절을 버텨준 나에게 고마워하면 돼요.
그리고 지금의 나는 조금씩, 제대로 나를 살아가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