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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잘하지만, 끝맺음이 어려운 나에게

by 감정의 조각들

나는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한 가지를 꾸준히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갖는 편이다. 그래서 폭넓게 알지만, 깊이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새로운 걸 배우고 싶다고 말하면 남편은 늘 이렇게 묻는다.
“그전에 하던 건 어쩌고?”
그러고는 “우선 그것부터 제대로 해보는 게 어때?”라며 덧붙인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괜히 움찔하고, 할 말이 없어진다.

학창 시절 공부할 때도 그랬고, 지금 운동이나 악기처럼 새로운 걸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이건 내가 잘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없다. 예를 들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모두 기초 회화 정도는 가능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하나도 없다.

어찌 보면 다양한 걸 할 줄 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시선에서 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꾸준히 해낸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쉽게 흥미를 잃고, 한 번 쉬게 되면 다시 시작하는 게 어렵다. 왜일까. 생각해 봤다. 혹시 나는 완벽주의자인 걸까?

한때 베이킹에 빠져 이것저것 장비를 갖추고는 열정을 불태운 적도 있었다. 재료부터 틀, 오븐까지 모두 준비했지만, 결국 채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방치된 것들이 아직도 많다.

또 어느 날은 드로잉을 배우겠다고 학원을 등록했지만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흥미를 잃었고, 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기타까지 구매했지만, 고작 일주일 만에 창고 깊숙이 넣어두고 말았다. 그때는 정말 열심히 해볼 생각이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고, 코드 하나 잡는 것도 손가락이 너무 아파 쉽게 지치게 되었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한 때 열심히 하다가도 하루만 빠져도 ‘계획이 틀어졌다’는 생각에 실망하고, “이렇게 된 거 내일도 안 해도 되겠네”, “그럼 모레도 쉬지 뭐” 하다 보면, 어느새 완전히 놓아버린다. 사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멈췄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되는 일인데, 나는 그 ‘다시 시작하는 힘’이 부족한 사람이다. 아니다 싶으면 빨리 손을 놓고, 또 다른 것에 쉽게 마음이 옮겨간다. 그래서 항상 뒷심이 부족하다. 그게 가장 안 좋은 거라고들 하던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어쩌면, 내가 꾸준하지 못하다는 걸 스스로 알기에, 그 단점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다양한 것을 시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끈기 없는 나 자신을 숨기려는 마음이 새로운 도전을 부추기는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 그런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아닐까.

또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프로처럼은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나를 주저앉히는 걸지도 모른다. 전문가처럼 잘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그만큼 될 수도 있는데, 나는 그 ‘계속함’ 이 어려운 사람이다.

혹은, 나는 아직 나에게 딱 맞는 취미나 배움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중일지도. 만약 그렇다면, 언젠가는 나에게 꼭 맞는 무언가를 만나고, 그걸 끝까지 해내는 나의 모습을 보고 싶다.

이렇게 이런저런 취미와 진로,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아직도 조금은 방황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나에게 맞는 길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멈추더라도 다시 시작하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괜찮아. 잠시 멈췄더라도 또다시 시작하면 돼. 나는 지금도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나 자신을, 오늘도 조용히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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