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4장
걷어내고 싶은 신화 같은 게 있다. 텍스트를 바르게 이해하는 걸 방해하는 신화. 어느 설교에서 어설프게 해석되었던 성경 본문들이 그렇다. 창세기 14장의 '멜기세덱'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창세기 14장은 아브람의 조카 롯을 둘러싼 일종의 국제 정세 변화로 시작한다. 그돌라오멜을 따르는 나라와 그를 따르지 않는 소돔과 고모라 등의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그 전쟁 중에 소돔에 살고 있던 롯은 그돌라오멜 군단에게 사로잡힌다. 조카가 잡혔으니 반대편에 떨어져 있던 삼촌이 나선다. 아브람이 롯을 구하러 간 것이다.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던 아브람은 318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롯을 구하러 간다. 밤에 그들에게 쳐들어가 롯을 구한 아브람은 재물과 가족, 친척까지 다 구해준다.
아브람이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길에 소돔 왕이 그를 영접한다. 살렘 왕 멜기세덱도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왔다.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자 제사장이었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단군왕검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 왕과 제사장을 겸하던 존재였다. 멜기세덱은 아브람을 축복한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멜기세덱의 축복과 권유에 아브람은 전리품의 10%를 멜기세덱에게 준다. 소돔 왕은 생뚱맞게도 "사람은 보내고, 물품은 가져가라."라고 말하지만 아브람은 소돔 왕의 물건 중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 어쩐 일인지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멜기세덱은 정치와 종교가 하나이던 시절에 한 지역의 최고 지도자였다. 그의 축복과 권고에 아브람은 전리품 중 일부를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로 준 것이다. 멜기세덱에게 준 것이지만 사실상 하나님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 줬다고 봐야 한다. 딱 거기까지. 나는 거기까지라고 본다. 여기서 해석을 더해 멜기세덱은 영적인 존재였다 거나 신의 현현이었다거나 구약의 예수님이라고 확대 해석하는 것은 이르다고 본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었던 아브람이 예배의 표시로 공물을 건넨 것뿐이다. 나는 그게 옳은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아브람은 당시 이미 318명의 훈련된 군사를 거느릴 정도의 강한 세력 중 하나였다. 기습이었지만 그 지역을 지배하던 그돌라오멜왕 무리를 이길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집단이었다. 그리고 약간의 결벽을 가진 신앙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멜기세덱과 소돔 왕 사이에 차등을 둔 것을 보면.
다른 부분은 모르겠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 하에 자신의 업적을 기꺼이 신의 공으로 돌린 아브람의 믿음과 행위만큼은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삶의 모든 국면마다 이기거나 기쁠 순 없겠지만, 가끔 이길 때라도 신앙의 행위를 해둬야 조금이라도 믿음과 관계가 깊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그것도 이기고 좋을 때나 할 수 있는 소리다. 아브람은 여러 왕들과의 짧은 전쟁에 다행히 승리했고, 작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그 입장에서는 괜찮은 승리였다. 에피소드 멜기세덱,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