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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성훈 Aug 17. 2020

vol. 50 - 어둠의 시

내 이름은 빨강 2

책을 읽으면 치유 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좋고 가벼운 책일 경우 그런데요. 좋다는 건 사람마다 다르므로 각자 취향에 맞는 책을 만났을 때 때론 치유 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고 한번 더 풀어 쓸 수 있겠네요. 


'내 이름은 빨강'은 제게 치유를 주는 책입니다. 책 무게가 가볍고 챕터가 짧아 성취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쓰는 말에 익숙하지 않아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행간을 놓치지 않고 읽었을 때 그것만으로도 상처가 낫는 느낌입니다. 


문장이 조금 섞였군요. 좋은 책이 치유를 주고, '내 이름은 빨강' 이라는 책이 제겐 좋은 책이어서 하루 종일 시달려서 생긴 상처가 낫는 기분입니다. 오독하더라도 말입니다. 


'술탄 앞에서 시합을 벌인 두 명의 의원 가운데 분홍색 카프탄을 입은 한 명이 코끼리를 죽일 만큼 독성이 강한 초록색 알약을 만들어서 푸른색의 카프탄을 입은 다른 의원에게 주었다. 푸른색 카프탄을 입은 의원은 먼저 독이 든 알약을 먹고, 곧바로 푸른색 해독제를 꿀꺽 삼킨 다음 달콤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그가 경쟁자에게 죽음을 맛보게 할 순서가 되었다. 푸른색 카프탄을 입은 의원은 천천히 분홍색 장미를 꺾어 입술을 갖다 대고는 장미꽃 속에다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작은 소리로 어둠의 시를 속삭였다. 그러고는 자신만만하게 분홍색 카프탄의 의원에게 장미 향기를 맡으라고 내밀었다. 분홍색 카프탄의 의원은 장미 안에다 속삭인 시의 힘이 너무나 두려워서, 향기 이외에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그 장미가 코에 닿자마자 겁에 질려 죽고 말았다.' 


- 내 이름은 빨강 2, 131p


하루 종일 한 번이라도 '시의 힘' 따위 생각이나 해봤겠습니까. 문장의 무게만으로도 치유 받는다고 생각하고 덮으려던 순간 만난 책의 한 구절에서 잠시 흔들립니다.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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