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에는 얼굴에 책임을 져야지."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내가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아마 이런 말을 많이 들으셨을 것이다.
그의 미간 사이에는 항상 십일자 주름이 있었다. 늘 화난 표정이었다.
그때는 나도 어렸기에 그가 아프고 힘들어서, 세상 살기가 막막해서 인상을 찌푸리고 살았다는 걸 알지 못했다.
이제 나도 마흔을 넘어보니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이미 나는 아버지보다 오래 살았다. 사람들이 자주 하는 저 말에도 수긍이 간다.
나이 마흔이면 사람들은 한 인간이 사회적으로 책임질 줄 아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
그의 기분이든, 태도든, 상황이든 알 바 아니다. '네 일은 네가 책임져라.'가 사람들이 마흔 살 이상 어른에게 바라는 것이다.
어른인 나는 어떤가. 얼굴에 책임을 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 거울 속의 나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어둡다.
하루에 몇 번씩 웃는 연습을 해도 표정이 쉽게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마음이 어두우니 말이다. 전혀 기쁘지 않으니 겉으로 티가 나는 것이다.
어느 날은 기쁘지도 즐겁지도 화나지도 슬프지도 않게 하루가 갈 때가 있다.
바빠서 그렇겠지, 책임이 무거워서 그렇겠지, 일에 적응하느라 그렇겠지 해도 내가 듣고 본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 기분이나 얼굴 표정, 태도 같은 걸 조절할 줄 알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예민한 게 장점이긴 한데, 예민한 게 단점이다.
바라는 건 이렇다. 마음이 기뻐서 얼굴이 밝아지는 것. 억지로 웃음 훈련을 하지 않아도 상시로 웃고 있는 것. 내가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면 가능하려나.
예민한 나는 늘 어렵다. 표정에 책임지기가 말이다. 그래도 꼭 화가 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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