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김치찌개를 잘 끓였다. 돼지 목살을 넣은 찌개였다. 찌개가 다 끓을 때쯤이면, “한번 먹어볼래?” 하며 나나 동생을 불렀다. 맛있었다. 항상 맛있었다.
요리하는 아빠가 싫었다. 맛있어도 싫었다. 어린 나는 아빠가 다른 아빠들처럼 나가서 일하길 바랐다. 엄마가 밖에서 일하는 게 마뜩지 않았다. 아빠가 집에 있어서 청소며 다른 집안일을 하는 것도 싫었다. 아마 아빠가 하는 그런 행위들이 싫은 게 아니라 어린 나이에도 아빠의 경제적 무능이 느껴져서, 그게 악처럼 느껴져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건 엄마 차가 아니라 우리 차야.”
엄마가 운전하고, 엄마가 주로 몰고 다니는 그 차는 어린 내겐 엄마 차였다. 우리 차라는 말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빠가 ‘우리 차’라고 하니 그런 것도 같았다. 가족의 물건이 너나없다는 점에서 생각해 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 후에는 그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나는 왠지 그 말이 좀 구차해 보였다. 아빠가 돈을 많이 벌어 왔어도 그런 말을 했을까 싶었다.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이제는 내가 아빠가 되고 나니 당시 내가 느꼈던 아빠에 대한 감정이 여러모로 떠오른다. 아빠가 느꼈을 그 좌절감, 자주 내쉰 한숨의 의미, 내가 뭐라도 하나 완벽하게 하길 바라던 신경질적 태도, 요리하고 청소하며 자신의 몫을 해내고 싶었던 마음. 어린 나는 이해하지 못한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또 다른 의미에서 내가 요리하고 청소하고 집안일해야 함을 생각한다. 사실 마음에 장벽이 많다. 뭔가를 하나 할 때마다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상처가 된다. 그런데 계속 그러고 있을 수만도 없으니 내가 할 일을 자연스럽게 해나가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 모른 척 그렇게 내 자리를 찾아가면 되겠지.
나는 그냥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돈 많이 벌어서 아내가 편하게 살게 해주고 싶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차원의 문제는 아니지만 돈 걱정은 하지 않게 해주고 싶다. 진짜 그러고 싶다. 아이도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살게 하고 싶다. 돈 이야기 꺼내는 걸 부담스럽지 않게 해주고 싶다. 한편으론 내가 집안 일도 잘해서 화목한 가정을 만들고 싶다. 내 딸은 나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해주고 싶다. 이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나는 김치찌개를 잘 끓이지 못한다. 해본 적이 없다. 해보면 곧 잘하게 되겠지. 상처에 기반하지 않고 내 인생의 주도권을 쥐는 방식으로 요리하고 집안일하고 가정을 일구고 싶다. 또 돈도 많이 벌고 싶다. 그래서 그냥 보통의 행복한 가정을 일구는 것. 나는 그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