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졸업한 후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당시에는 ‘초등’이라는 말이 참 우스워 보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국민’이라는 말이 전체주의의 흔적같이 느껴진다.
‘국민’ 학교 저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아침마다 오백 원을 줬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손 넣고 다니지 말라고 했다. 나는 손 넣는 게 더 편하다고 했다. 오백 원은 하루 용돈. 물가가 싸서 그 정도 돈이면 초등학교 저학년이 할만한 일은 다 할 수 있었다. 나는 내 마음대로 쓸모없는 것들을 사고, 쓸데없는 곳에 오백 원을 썼다. 조금 미안하기도 했는데, 매일 아침 오백 원이 새로 주어지니 죄책감은 금세 잊혔다.
“오백 원 어디다 썼니?"
“붕어빵 사 먹었어요.”
“5개나?”
“네….”
실제로 다섯 개를 사 먹은 적도 있었으니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미안하긴 하다.
아빠랑 주말 아침에는 먼 동네에 가곤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차가운 공기를 맡으며 알 수도 없는 길을 걸었다. 관악산 너머 어느 동네에 도착한 적도 있었는데, 그 동네는 아침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났다. 지금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 그 동네에 이르는 길 언덕에서 아빠랑 강아지 이름 짓기 가위 바위 보를 했던 기억도 있다. 미니핀 종의 강아지를 어디서 받아 왔는데, 코비로 지을지 티코로 지을지 이야기하다가 결국 내가 이겨서 티코로 정했다. 강아지가 작았고 당시에는 국민 카로 트렌디한 이름이었다, 고 초등학생은 생각했겠지. 어쨌든 이겨서 기분 좋았다. 그 티코는 막상 무서워서 잘 만지지도 못했다.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니 자라는 동안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잘할 수 있을까, 사춘기 때 틀어지면 어떻게 하지? 등등. 막상 깊이 있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게 되지만….
아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오백 원, 사용처를 추궁하지 않는 여유, 강아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넘어갈 수 있는 마음. 그런 것들을 갖춰야겠지.
붕어빵이 근데 요즘은 3개 천 원이던데….
나는 이름 짓기에 예민한데….
나중에 생각하자,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