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를 결심했고 일요일 오후 동네 포장 횟집 테이블에서 혼자 내추럴 와인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계획상으론 오후 3-5시까지 말끔하게 마시고 이후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었는데
밤 11시까지 일요일을 완전히 놓쳐버렸다.
정확히는 술에 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향을 마시기 전까지가 가장 좋다.
그런데 그 향을 느끼려다 보면 결국 뇌는 취기에 젖는다.
맑지 않은 정신 상태는 너무 혼잡하고 힘들다.
더욱이 나 같은 뇌에는 술은 약이거나 독이다.
삶이 쌓여가고 토해내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술은 더욱 쥐약이다.
그럼 원인을 말끔히 제거하는 편이 옳다.
이제 이 느낌을 더 느끼지 않고 싶다.
16년 간 마셔봤으면 이제 된 거 아닐까.
어제의 결심을 한번 더 확인해 준다.
월요일 아침이 더 늦어졌다.
늦더라도 늦은 아침 일기 루틴을 챙기면서 잃어버린 일요일을 다시 채워보자.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제시해 준 방법대로
의미 있는 글을 쓰려 애쓰지 않고 생각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적어본다.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보기란 그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네.
눈을 뜨고 달력을 본다.
10월도 마지막이다.
주민등록법상 서른여섯을 넘기고 있고
의학적으로는 출산 가능성이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지금까진 결혼과 출산에 대한 욕구를 크게 느끼고 있진 않지만 시뮬레이션은 때때로 그려본다.
어릴 적부터 온전히 내 신체적 기능으로 수행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그중 출산은 누군가도 아닌 결국, 바로 내가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외 대단한 마인드셋으로도, 천문학적인 금액으로도 도저히 돌이키거나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시간이 흘러가면 절대 할 수 없는 그런 일들.
아역배우, 출산, 미성년자, 청년, 유년시절 친구 같은,
시간을 놓치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이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왜 나는 욕구도 없는 선택지에 지속적으로 가정과 현실적 대안을 그려보고 있는 걸까.
나아가 인간은 왜 보통 결혼과 출산, 양육은 경험해 본 적이 없는데 경험해보지 않은 것들에 욕구를 느낄까,
한국 사회 흐름이 학습된 걸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어쩌면 그 사회적 흐름이 다수의 개인의 욕구와도 부합되었으니 선택되었던 거 아닐까?
어쩌면 단순한 본능인 건데 굳이 물음을 가져야 했을까.
초등학교 때 가타카를 보며 공감했던 나는 어쩌면 지극히 본능에 기반한 인간이었다.
십 대 때부터 교제 전, 상대와 나의 유전자 조합으로 나타날 수 있는 2세의 형태를 추측해 보고
상대가 양육과 가정을 함께 적합한 사람일지까지 계산 후 교제를 결정한다.
요는 현실적으로 출산에 대한 선택의 폭은 앞으로 한 해 한 해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뭐, 아침 달력을 보며 잠시 이런 생각을 했다.
가타카가 적인 생각.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돌려 읽으면 재미있을 소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