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뿜뿜 넘치는 신입사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아빠레터]는 십여년 뒤에 사회생활을 시작할 두 아들에게 아빠가 먼저 도전하고 경험하며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편지글로 적어 미래로 보내는 타임캡슐입니다.
아들아, 요즘 아침마다 분주하게 회사갈 준비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구나. 아빠도 신입사원일 때는 매일 아침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집을 나설 때 세상 모든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자신감이 넘쳤었지. 회사 건물에 들어서면서 출입카드를 목에 걸면 내가 이 큰 회사의 일원이라는게 뿌듯하기도 했고 말이야.
그런데, 아빠의 경험으로는 신입사원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더구나. 회사의 규모가 클수록 신입사원에게 맡겨지는 일의 중요도는 더 작아지는 것 같고 말이야.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작다고 해서 회사가 너에게 거는 기대가 작은 것은 아니란 걸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아빠가 생각하기에 회사가 신입사원에게 바라는 몇 가지 기대사항을 적어 본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아래의 내용들은 단순히 너의 선배 혹은 리더, 다시 말해 특정 개인이 너에게 바라는 게 아니라, '회사'라는 조직이 너에게 바라는 점이라는 거야. 너와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 개개인은 그들 각자의 사정과 입장으로 너에게 무관심하거나, 혹은 너를 시기질투할 수도 있겠지만, '회사'라는 조직은 결국 신입사원이 빠르게 성장해서 기존 구성원들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기를, 이후에는 좋은 리더가 되어서 후배들을 너보다 더 나은 조직 구성원으로 성장시켜 주기를, 그래서 조직 전체가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렴.
어쩌면 지금 아들의 세대는 아빠가 경험한 회사생활과는 많이 다를 수 있고, 신입사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해 졌을 수도 있겠지만, 아빠가 생각하기에 시대를 불문하고 어느 조직에서든 그 조직에 새로 투입된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일 수 있으니 시간 날 때 가볍게 읽어 봐 주면 좋겠다.
1. 성실하게 임하기
아빠가 어렸을 때는 '성실'이라는 표현이 여기저기에 많이 쓰였는데, 요즘에는 다소 올드한 가치관으로 인식되어서인지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말인 것 같아서 조심스럽지만 우리 아들만큼은 '성실'이라는 태도가 갖는 큰 가치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 보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고백하자면, 아빠도 신입사원일 때는 성실이라는 가치 보다는 효율, 창의, 혁신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빠르게 곧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
성실하다는 건 단순히 주어진 업무를 시간에 맞춰서 열심히 한다는 것을 넘어서 일에 정성과 진심을 담는다는 의미란다. 성실한 사람은 아주 작은 일이라도 그 일을 하는 목적과 의미를 찾고, 그 일을 통해 누가 얼마만큼의 효익을 얻게 되는지, 그래서 이 일이 조직 전체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오는지 스스로 고민하는 사람이야.
물론, 선배나 상사가 너에게 업무를 줄 때, 그 일이 갖는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면 좋겠지만, 모든 일 하나하나를 그렇게 해 주기는 어렵기도 하고, 사실은 그들조차도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저 앞사람이 하던데로 하고 있을 뿐일지도 몰라. 세상 사람 모두가 성실하게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남들이 어떻든 우리 아들만큼은 일에 스스로 의미를 찾아 부여할 수 있는 성실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주어진 일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니까.
2. 기존의 방식 익히기
일의 의미를 찾았다면, 이제 일하는 방식을 익힐 차례야. 아마도 (아빠를 닮은) 우리 아들은 남들이 했던 방식 말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야. 그것도 물론 정말 좋은 자세이지만, 혹시 그 일이 이전에도 여러 차례 진행되어온 일이라면 우선은 기존에 선배들이 해 왔던 방식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아.
기업의 규모가 크고 역사가 길수록, 아주 오랫동안 일을 처리해온 방식이 있을 거고, 그 일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 방식에 익숙해 있어서 네가 갑자기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을 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거야. 너에게는 너무나도 혁시적인 창의적인 방식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존의 행동패턴을 바꿔야 하는 불편함으로 느껴질테니까 말이야.
더군다나, 회사에서 아주 오랫동안 그 일을 반복해 왔다면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여 이미 최적화된 업무 방식일지도 몰라. 그러니, 일단은 기존의 업무 방식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선배들이 어떤 배경과 목적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이렇게 만들어 왔는지 그 일의 역사를 하나하나 먼저 체감해 보는 것은 어떨까?
3. 그리고 비판하기
자, 여기서부터가 진짜니까 집중해서 읽어주길 바래. 기존의 업무 방식을 성실하게 익혔다면, 분명 너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비합리적인 부분이 여기저기 보일거야.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바뀌었으니 기존의 방식이 현재의 사람에게 100% 맞을리가 없어. 기존의 방식은 기존의 사람에게 최적화되어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 때 네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과거를 비판하는 거야. '비난'이 아니라 '비판'이라는 점을 명심하렴. 단순히 기존의 것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으로 끝나면 절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어. 변화를 만들어 내려면 2가지가 필요한데, 첫째는 일에 미치는 환경 요소 중 바뀐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고, 둘째는 대안을 마련하는 거야.
우리 아들이 앞에서 아빠가 말한 1번(성실하게 임하기), 2번(기존의 방식 익히기)을 잘 했다면, 기존과는 무엇이 달라서 현재에는 맞지 않는지, 그리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여기서 주의할 점 한 가지! 변화된 환경 요소와 대안을 기반으로 멋진 기획안이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그걸 들고 리더에게 보고하지는 말고, 여기에 한 가지만 고민을 더 해 보자꾸나. 그건 바로, 2번에서 이야기한 그 일과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배려'야.
네가 고민하고 준비한 내용이 완벽해 보일지라도, 그건 오로지 너의 생각일 뿐이란다. 같은 일을 아주 오랫동안 여러번 반복해 오면서 그 일에 익숙해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불편하고 불확실한, 그래서 지금까지 수없이 거부해 온 여러 낯선 아이디어 중 하나일 수 밖에 없어. 그러니 그들의 입장에서 이 아이디어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하고, 그에 대한 추가적인 대안을 마련하는게 필요해. 너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그들의 입장에서도 기존보다 나은 베네핏이 있어야 하는 거지.
'배려'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이건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철옹성같은 관습의 성을 무너뜨려 너의 아이디어를 관철 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오히려 너를 위한 무기를 마련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렴.
'내 생각이 옳고 저들이 틀렸어. 저들은 그저 자신이 편하자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할 뿐이야. 나 또한 나의 방식을 고수할거야.' 혹시 우리 아들이 이런 마음을 떨쳐낼 수 없다면, 아빠는 아들에게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창업해서 너만의 비즈니스를 운영해 볼 것을 조언하고 싶다.
4. 부딪치고 깨지기
이제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면 리더에게 너의 생각과 계획을 보고할 차례야. 그런데, 처음부터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게 좋아. 아빠가 예상하기에 십중팔구 통과되기 어려울 테니까 말이야.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회사라는 조직은 아주 오랫동안 다양한 의사결정자들이 함께 일을 하며 지금까지의 업무 프로세스를 만들어 왔는데, 우리 아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열심히 노력했더라도 긴 시간 이어져온 기업의 역사를 모두 파악하고 그 안에서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상황을 고려한 대안을 만들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거야.
설령, 너의 아이디어가 정말 완벽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건 너의 눈에만 그런 것이지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 어쩌면 너 스스로도 한두달 시간이 흐른 뒤에 지금 작성한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면 구석구석 빈틈이 보이고 처음 생각했던 문제의 본질이 사실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도 많을거야.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차피 소용없는 일이니까 그저 기존에 하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걸까? 물론, 아빠의 대답은 No란다. 아빠는 이러한 과정을 '빌드업'이라고 표현하고 싶어.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지금의 시도는 앞으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이야.
한 편으로는 스스로 '테스트'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 조직을 설득하고 의사결정을 받아내기 위해 기획의 주제와 논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리더의 취향과 관심사도 아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미리 파악해 두는 거지.
아빠가 어렸을 때 아주 인상깊게 본 [라스트캐슬]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교도소의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체계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이 쿠데타를 계획하면서,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교도소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실제로 테스트를 해 본 뒤에 그 프로세스에 맞춰 전략을 수정해서 결국에는 승리를 거두는 내용이야. 정말 재미있는 영화니까 주말에 시간이 될 때 보면서 아빠가 말한 '빌드업'과 '테스트'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좋겠다.
5. 다시 부딪쳐 연마하기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모든 보석은 원석을 정성스럽게 갈고 닦아 "연마"해야지만 얻을 수 있고,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보석으로서의 높은 가치를 얻게 되지.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일도 비슷한 것 같아. 아무리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도 시간을 두고 곱게 연마하지 않으면 현실화할 수 없고, 실현되지 않은 아이디어는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해.
그러니, 조직과 사업의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된다면 시간을 두고 자주 부딪치며 너의 생각과 논리를 연마해 가는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단다. 이 때, 아빠가 사용했던 몇 가지 방법들이 있어서 노하우를 공유하니 쓸만한 아이디어라면 적용해 보길 바래.
1) 선배 도움받기
팀 내에서 리더의 신임을 받는 에이스 선배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지원사격을 받는 것도 좋아. 이런 사람은 대체로 그 팀에 가장 오래 있었고 일처리가 깔끔한데, 이런 사람이 너의 제안이 꽤 쓸만하고 요즘 트렌드와 잘 맞는다. 한 번 해 볼만하다고 한두마디 거드는 것만으로도 너에게 큰 힘이 실릴거야.
2) 표현 바꿔보기
4번(부딪치고 깨지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의사결정을 잘 받으려면 리더의 요즘 관심사가 무엇인지 파악하는게 중요한데, 관심사를 확인했다면 관련된 내용을 기획에 포함하고, 그에 맞춰 곳곳의 표현만 살짝 바꿔보아도 반응이 달라질 수 있어.
참고로, 요즘에는 AI가 정말 핫한 주제여서 대기업의 보고서에는 AI가 무조건 포함되어야 한다는데, 이 글을 읽는 아들의 시대에는 또 다른 새로운 주제들이 넘쳐날테니 요즘 시장에서 경영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무엇인지 평소에 리서치를 많이 해 두면 도움이 될 거야.
3) 사석에서 이야기 나누기
때로는 너의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공간과 분위기만 바꿔보아도 도움이 될 수 있어. 리더와 단둘이 식사를 하거나 술 한 잔 하면서 네가 왜 그러한 제안을 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보고서에는 담지 못한 디테일들이 군데군데 비어있던 부분을 채워주면서 리더 입장에서 뭔가 부족해 보였던 전체 그림을 완성시켜 주기도 하거든.
뿐만 아니라, 사석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면 너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호감이 올라가서 리더가 너의 의견을 더욱 지지해 주기도 하니까 논리와 자료만으로 일이 안 풀릴 때는 상대방과 사적으로 시간을 가져보는 걸 강력히 추천한다.
4) 잘 정리해 뒀다가 다시 꺼내기
이래도 저래도 안 된다면 한 발 물러서는 것도 방법이야. 일이라는게 타이밍이 있는 법인데, 그 때가 올 때까지 잠시 기다려 보는 거지. 기다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도 있는데, 그 때가 되었을 때 바로 다시 꺼내어 쓸 수 있게 관련 자료와 보고 과정에서 받은 피드백들을 잘 정리해 두면 좋아.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너 스스로도 '내가 왜 이 일을 하려고 했는지'의 감각을 되살리기가 어려울 수 있거든.
묵혀두었던 제안을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꺼냈을 때 아주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분명히 똑같은 제안인데 이전에는 관심이 없다가, 이번에는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인정받는 경우가 있어. 이게 바로 '타이밍'의 힘이란다.
모든 일에서 적당한 타이밍을 발견하는 것, 혹은 할 수만 있다면 그 타이밍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일 잘하는 사람의 차별화된 경쟁력이기도 하다는 점을 명심하렴.
흔히들, 신입사원에게는 '열정'과 '패기'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아빠는 이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해. 신입사원은 기존 선배사원들과는 다르게 꺾이고 치이는 과정을 덜 경험해 봤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강할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방향성과 목적성 없이 무조건적으로 돌진만 해서는 그 어떤 성과도 내기가 어려워.
신입사원에게도 빠르고 바르게 성장하기 위한 전략과 계획이 필요한데, 위의 내용이 우리 아들이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생리와 일이 되게 하는 법을 생각하면서 일을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명심하렴. 회사는 신입사원이 당장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한 방법을 익히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