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메일의 3가지 조건과 5가지 Training 방법
일을 잘 하기 위해 필요한 스킬과 역량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저는 "글쓰기"를 선택하겠습니다.12년 정도 되는 직장 생활 경험 상, 글쓰기를 잘 하는 사람이 모두 일을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일을 잘 하는 사람 중에 글쓰기를 못 하는 사람은 기억에 없습니다.
회사에서 우리가 수행하는 일 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전략-마케팅-영업-기획-개발-운영-HR-재무 등등 비즈니스를 구성하는 모든 Function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 마디 마디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시냅스가 채우고 있는데, 커뮤니케이션이 시원찮은 사람이 있으면 조직간, 팀원간 연결에 비효율과 잡음이 생깁니다.
커뮤니케이션은 대부분 말과 글의 형태로 이루어 지는데, 말은 대체로 가볍고 글은 진중합니다.말은 허공에 흩어지고 저마다의 기억 속에서 왜곡되지만, 글은 흔적과 증거를 남기고 아이디어를 현실에 붙잡아 둡니다.
글쓰기는 사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보고서, 메신저는 물론, 고객을 설득하기 위한 제안서, 시공을 초월하는 이메일, 제품과 서비스를 돋보이게 하는 마케팅 콘텐츠까지 비즈니스 환경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소비됩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비즈니스 글쓰기의 정수는 이메일입니다.
이메일은 메세지(A)에 더해 스토리(B)와 구조(C)를 갖춰 수신자의 이해를 돕고, 오해와 불편을 방지하기 위해 뉘앙스(D)와 상대에 대한 배려(E)까지 더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글쓰기 작업입니다.
사원 1년차, 신입일 때는 한동안 이메일을 작성하는 매 순간순간이 고통이고 고역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십니까?", "처음 인사드립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상대에 따라 적합한 인사말을 찾는데만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안녕하세요' 뒤에 쉼표를 붙일지, 마침표를 붙일지, 물음표를 붙일지를 가지고도 또 한참의 시간을 흘려 보내느라, 업무 처리 속도가 늦다는 상사의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만큼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이메일. 그렇다면, 좋은 이메일은 어떤 걸까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이메일의 3가지 조건'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잘 쓰여진 이메일을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이메일 작성자에 대한 호감이 생깁니다. 길고 지루한 건 참기 어려운 요즘같은 초스피드 시대에도 잘 쓰여진 이메일은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행간에 숨어 있는 작성자의 의도와 진심, 배경과 전략을 파악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간을 쏟게 만듭니다.
저에게 있어 잘 쓰여진 이메일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아니라, 사람과 사업을 이해하고 배우는 학습의 도구입니다. 그래서 저는 메일함에 '좋은 이메일' 폴더를 만들어 놓고, 잘 쓰여진 이메일을 만나면 따로 저장해 두었다가, 기회 될 때마다 꺼내어 읽곤 하는데요, 여기에 모아 놓은 이메일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대체로 아래와 같은 3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잘 쓰여진 이메일은 무엇보다도 비문이 없습니다. 비문이 없다는 건 읽기가 편하고, 논거의 흐름이 자연스럽다는 말입니다.
잦은 맞춤법 실수, 부자연스러운 조사와 접속사의 사용, 있어야 할 곳에 없는 주어와 목적어 등등... 비문이 많은 이메일은 읽는 내내 독자의 신경을 긁어 집중력을 저하 시키고, 결국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본질까지 도달하게 어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메일을 잘 쓰고 싶다면, 내가 작성한 글에 비문이 있지는 않은지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수정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잘 쓰여진 이메일의 두 번째 특징은 간결성입니다. 시나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메일에서는 화려한 미사여구는 내려 놓고, 메세지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동일하거나 유사한 내용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을 몇 개의 문장으로 길게 늘여 쓰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검열이 필요합니다. 간결한 이메일은 독자의 시간을 아껴줄 뿐만 아니라, 내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세지를 보다 직접적이고 임팩트있게 전달하는데 효과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잘 쓰여진 이메일은 독자의 행동을 유도합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동의 물결이 넘쳐 흐르는 것으로 끝나 버리는 이메일은 한 편의 좋은 에세이는 될 수 있지만, 좋은 비즈니스 이메일은 될 수 없습니다.
이메일을 읽고 나서 내가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한 회신을 하게 하거나, 문제 상황을 내부에 공유하여 해결책을 찾게 하거나, 나를 대신해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등등... 내가 보낸 이메일로 하여금 독자가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해 기꺼이 움직일 수 있을 때, 그 이메일은 존재 가치를 갖습니다.
그래서, 이메일을 작성할 때는 단순한 팩트와 의견의 나열이 아니라, 내가 독자에게 바라는 행동을 명확히 정의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1)비문이 없고, 2)간결하고, 3)행동을 유도하는 좋은 이메일은 노력하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타고난 재능일까요? 운동이든, 예술이든 모든 분야가 그렇듯 재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 상급자 수준까지는 누구나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마지막 챕터에서는 제가 주로 사용하고 경험하면서 익힌 "이메일 작성 능력을 키우기 위한 5가지 Training 방법"을 공유합니다.
너무나 뻔한 솔루션이지만 책을 많이 읽는 것 만큼 글쓰기 실력, 이메일 작성 실력에 도움이 되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외국의 유명한 기업가, 학자들이 쓴 책을 번역한 인문서, 자기개발서, 경영서적을 즐겨 읽는 편인데요.
이런 유명한 사람의 책은 번역도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기 때문에, 번역된 글의 수준이 매우 뛰어나서 간결하면서도 메세지 전달력이 높은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이 됩니다. 최신 비즈니스 트렌드와 표현들을 배울 수 있는 건 덤이구요.
두번째 방법도 역시나 뻔한데요, '다독'과 병행하는 '다작'은 글쓰기 실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킵니다. 일기를 쓴다는 생각으로, 혹은 업무일지를 쓴다는 생각으로 짧은 글을 반복해서 써보는 훈련을 하면 좋은데요, 나만 보는 곳에 저장해 놓기 보다는 페이스북, 링크드인, 브런치같은 SNS에 올려 독자들의 반응도 보고, 피드백도 받으면서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세번째는 좀 더 편리하고,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입니다. 내가 작성하고자 하는 목적과 가장 유사한 타인의 이메일을 그대로 복붙해 놓고, 인사말부터 시작해서 한 문장, 한 문장 나의 상황에 맞는 내용과 표현으로 조금씩 수정해 나갑니다.
수정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3번 정도 반복하면, 그 이메일은 더 이상 기존의 메일과는 다른 나의 이메일이 되는데요, 이런 벤치마킹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잘 쓴 이메일의 구조와 표현들이 내 것으로 습득이 되어서, 나중에는 굳이 타인의 이메일을 가지고 오지 않아도 나만의 오리지널 이메일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은 훈련을 위해서는 평소에 잘 쓴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따로 저장해 놓는 습관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한 때,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 특히 세일즈맨과 상사맨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웠던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네번째 Training 방법은 바로 이 '미생'에서 철강팀 대리가 신입사원에게 사용한 방법인데요, 작성된 이메일을 줄이고, 또 줄여서 최대한 짧고 콤팩트하게 만드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불필요한 수식어, 접속사를 없애고, 긴 문장을 단어 하나로 교체하는 등의 시도를 통해 문장을 줄여나가다 보면, 간결하면서도 메세지 전달력은 높은 이메일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다섯번째 Training 방법은 다른 사람의 이메일을 대신 쓰는 건데요, 이건 회사를 다니면서 제가 가장 하기 싫었던 짜증 최고조의 일이었음과 동시에 이메일 작성 역량을 극대화 시켜 준 방법이기도 합니다.
규모가 좀 있고, 직급 체계가 많은 회사에 다니는 분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보셨을 것 같은데요, 임원이 사장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말단 사원인 저에게 초안 작성을 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내가 작성한 이메일을 팀장이 리뷰해서 수정하고, 그 메일을 다시 상무가 리뷰해서 수정하고, 그 메일을 다시 전무가 리뷰해서 최종적으로 사장에게 보내는 건데요,
내가 마치 전무가 된 것처럼 빙의해서 글을 작성해야 하는데,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회사 생활의 경험도 다르고, 가지고 있는 정보의 질과 양도 천지차이인 전무를 대신해서 내가 이메일을 쓴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임과 동시에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메일 한 통 작성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린 적도 있고, 그렇게 작성한 이메일의 최종 버전(전무 > 사장)을 보면 내가 작성한 내용은 온데간데 없고, 전혀 다른 이메일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럴거면 처음부터 전무 본인이 이메일을 썼으면 좋았을 것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문득 뒤를 돌아보니 그 때 전무의 시각에서, 상무의 시각에서, 팀장의 시각에서 작성했던 이메일 초안들이 저의 이메일 작성 실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아닌 타인의 시각에서 현상을 바라보고, 그에 대한 의견을 또 다른 타인에게 전달하는 경험은 일상에서는 흔치 않으니까요.
팀장은 내가 작성한 메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상무는 어디를 고치고 싶어할까? 전무는 사장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당시만 해도 나를 매우 고통스럽게 했던 이 질문들이 이메일을 단순한 글쓰기가 아닌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갖게 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와 같은 업무 방식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한 편으론 어리석고 폭력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기에는 조금 조심스러우니,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라면 공감은 하시되 주변인에게 강요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첨언하고 싶은 건, 이와 같은 구체적인 실천에 앞서 '나는 여전히 글쓰기 실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계속 타인의 글쓰기를 보고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는 겸손의 마인드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겸손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만이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위와 같은 노력, 혹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비문 투성이에 장황한 이메일을 쓰는 동료에게 본인의 글쓰기에 만족하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요, "나 정도면 충분히 이메일을 잘 쓴다고 생각한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이미 본인의 능력이 완성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지간해서는 타인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별다른 피드백을 드리지는 않았는데요,
그 이후로 그 분이 자신의 글쓰기 실력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지켜봤는데, 별다른 노력도, 어떠한 성장도 이루어지지 않는 걸 보고 많이 씁쓸했던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