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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문 Sep 29. 2021

가장 일상적인 것

타이페이 융캉제 거리

어린 시절에는 떠들썩한 여행을 주로 다녔던 것 같다. 시간을 쪼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 하였다. 같이 여행하는 친구들과 최대한의 기분을 즐기려 하였고 때로는 과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SNS 업로드가 주 목적이 될 때도 있었다.
 

회사 교육으로 3주간 타이페이에 머무르면서 나에게는 시간이 아주 많았다. 근무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6일 정도 휴일이 주어졌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한 고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혼자서 해외를 여행하는 것이 생각보다 따분하고 심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보고 싶던 여행지를 다 돌아본 후에도 남는 시간. 하지만 주어진 시간을 호텔방 침대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대만 방송을 보면서 보낼 수는 없는 법. 계획 없이 길거리로 나섰다.
 

현지인들이 자주 다니는 어느 골목길로 들어섰다. 한산한 주말 오후.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즐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택가에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나는 아주 큰 밀크티 한 잔을 주문하여 어느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이곳은 가장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그곳의 분위기를 눈에, 냄새를 코에, 소리를 귀에 담았다. 어느샌가 나는 여행자가 아닌 그들의 일상 속에 들어가 있는 주민처럼 느껴졌다. 동네 아이들과 놀아주고, 주민들과 눈인사를 하는 나의 모습은 꽤 그럴싸해 보였을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타이페이에서의 혼자 있던 시간 덕분에 여행의 색다른 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가장 일상적인 것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들의 삶에, 일상에 들어가 그들과 같이 보고 듣고 느껴보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아닐 수도.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저 같이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후로도 종종 혼자 여행을 다닌다. 물론 누군가와 동행이 더 즐겁긴 하다. 하지만 혼자 조용히 여행지에서의 가장 일상적인 것들을 느끼고 함께 했을 때 마음속에 잔상이 오래감을 느꼈다. 색다른 여행의 매력을 느끼고 싶은 누군가에게 홀로 떠나서 잔잔히 머무르며 그곳의 일상을 느껴보는, 그러한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일상의 순간
대용량 코코밀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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