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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문 Mar 03. 2022

걸어서 중문 속으로

제주도 이야기 #5

일 년 사이 벌써 네 번째 제주도 여행. 한라산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해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고 생각하여 이번에는 오직 한라산만을 위한 여행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제주도 날씨에는 속수무책. 욕심부리지 않고 오늘 하루는 숙소 주변을 둘러보기로 한다.


중문 관광단지는 이미 여러 번 왔었고, 주상절리를 포함한 여러 관광단지들은 굳이 다시 가고 싶지는 않았다. 또한 나의 여행 스타일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는데, 이제는 유명한 곳에서 인증샷을 찍기 위한 보편화된 여행이 아닌 유명하지 않은 곳 위주로 구석구석 둘러보는 것이 좋다.


호텔 주변을 걸어본다. 눈에 들어온 자그마한 돌담길로 접어드니 관광객 한 명 없는 시골길이 나온다. 작은 귤 농장, 우거진 야자수들 사이를 끊임없이 걷는다.


카페 '테'

골목길을 벗어나 고개를 돌리니 고즈넉한 집이 보인다. 여유로운 들판에 우두커니 서있는 이곳은 카페 '테'이다. 마치 기대하지 않던 찰나에 대어를 낚은 기분이었다. 그만큼 이곳은 아름다웠고 나의 몸은 자연스럽게 끌려갔다. 내가 대어를 낚은 것이 아니라, 내가 이 공간에 낚였다.


취향저격

굳이 사람들이 많이 오기를 바라는 것 같지 않았다. 물론 수입을 위해 커피를 '판매'하는 것일 테지만, 이 공간에서의 추억을 '제공'하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기교 없이 깔끔하게 꾸며진 공간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특이한 유리잔

쏟아지는 조명 아래 특이한 모양의 유리잔이 전시되어있다. '내가 주인공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옛스럽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예스럽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버스정류장이다. 정류장 한 곳에는 주상절리 사진이 걸려있다. 마치 내 고향 청주에서 어딜 가나 가로수길 사진이 걸려있는 느낌과 비슷하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유명 관광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전혀 특별한 것 없이 보며 자라온 풍경을 보러 온 사람들이 당최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무엇인가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자체의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타인의 주관이 나의 의견이 된다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삶의 여행을 더욱 즐겼으면 한다.


실속 꽝

재료가 비싸서 그런가 이렇게 비싼 라면은 처음 먹어본다. 입이 떡 벌어지는 비주얼, 하지만 실속은 없었다(맛은 있었다). 딱새우와 대게다리는 그저 국물 맛을 내기 위한 도구였을까? 씹지 못해 버리는 부분이 반 이상이었다.


나는 과연 실속 있는 사람일까? 겁만 번지르르하고 내면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은 아닐까? 두 번 다시 먹고 싶지 않은 비싼 라면이 될지 또는 언제나 생각나서 먹고 싶은 신라면이 될지.


주상절리

이곳을 다시 올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6년 만에 다시 온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는 했다. 마침 직통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왔다.


6년 전 주상절리를 볼 때에는 '어떻게 바위가 저렇게 멋지지?'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의 눈에는 바위가 들어오지 않고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가 담긴다.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우리의 마음을 홀리는 '불멍' 같이 매번 색다른 모습으로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멍'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낮잠

몸이 피곤하였던 걸까? 벤치에 한참을 누워있었다. 누워서 올려다본 야자수는 조금 색다른 모습이었다. 일반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느낌과는 다르게 조금 무서운 느낌인데, 마치 거대한 어떤 것들에 둘러싸인 느낌이다.


사물이나 현상 혹은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도 모두 제각각이다.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때마다 같은 것 일지라도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은 그 키가 제각각이듯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도 제각각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기에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본다. 나만이 정답이고 옳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타인의 삶을, 상황을 한 번쯤은 이해하려는 노력이 조금은 필요하지 않을까.


걸어서 중문을 여행한 후 집으로 돌아간다. 이곳 중문에서의 나의 집은 2박 3일간 머무는 호텔이다. 영원한 나의 집은 아니지만, 돌아가서 편히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마음에 평안함을 준다.


나의 브런치,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 집처럼 여겨지면 좋겠다. 지치고 피곤한 하루의 끝에서 구나 하게 읽을 수 있는 글로써 평안함을 주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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