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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문 Mar 01. 2022

걷고 또 걷다 보면 무엇인가 떠오르겠지

한라산 탐방 프로젝트 #1

새벽 5시 알람이 울린다. 게스트하우스의 바스락 거리는 이불을 발로 힘껏 걷어차며 거친 하루를 시작한다. 파이팅 넘치는 하루를 시작하는 오늘은 한라산 둘레길 1구간 천아숲길 및 2구간 돌오름길을 걷는 날.


사실 이번 제주도 여행의 컨셉은 '한라산'이다. 조금 욕심을 부려 한라산 둘레길, 윗세오름 및 백록담을 전부 다 걸어 볼 생각이다.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여행의 설렘이 나를 움직이기보다는 타이트한 일정 덕분에 몸을 일으킨다. 역시 나는 극 J 성향이다.


한라산 둘레길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이다. 그래서 오히려 좋다. 여행력이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여행을 조금 다녀본 나로서는 이제 조용한 곳이 좋다. 조용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을 여행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일 기대되는 여행지였다.


한라산 둘레길 천아숲길 구간 초입

새벽 7시 천아숲길 초입에 도착하였다. 이미 예상을 했지만 정말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적막을 깨고, 사슴들의 발자국 소리가 귀에 울린다. 기대감을 안고 첫발을 내딘다.


나를 반겨주는 하늘

분명 달이 지는 방향이었다. 언뜻 보면 해가지는 듯한 느낌이다. 해가 지는 시간의 낙조를 참 좋아하는데 달이지는 여명을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그 언제든 태양과 달이 만들어내는 하늘의 수채화는 마음을 따듯하게 만든다.


친절한 표지판

한라산 둘레길은 아직 많이 유명하지 않지만 곳곳에 이정표가 정말 잘 되어있다. 소수의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정표가 잘 표시되어야 하는데 이곳은 그 본질을 놓치지 않았다. 나도 그 소수의 누군가를 위해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끔은 원대한 꿈보다 작고 소중한 소망이 귀할 때가 있다.


둘레길이 아닌가

사실 둘레길이라 해서 걷기 편한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초입부터 돌길이다. 자갈이 아닌 바위산을 지나야 만 한라산의 흙을 밟을 수 있는데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다. 역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건가.


'숲'길

어느 정도 걷다 보면 우거진 숲길이 등장한다. 내가 기대한 그대로였다. 우거진 나무 숲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작은 햇살은 메말라버린 마음에 비치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구름에 가리어져 아주 잠시 동안만 그 모습을 나타내고 사라지는 햇살이 마음을 간지럽힌다.


천아숲길의 느낌은 말 그대로 숲길이다. 숲 속을 걷는다는 느낌은 꽤나 오랜만인 것 같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사슴벌레를 채집하기 위해 거닐던 숲 속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마치 그 어린날 숲 속을 탐험하던 설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돌오름길 초입

대략 11km를 걸으니 돌오름길 초입이 나온다. 너무 갑자기 오랜만에 걸어서 다리가 후들거린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돌오름길로 달려가고 싶지만 건강을 위해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숲 길을 걸어온 나의 마음은 소년이지만 몸은 이미 망가진 삼십대라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린다.


공포영화

돌오름길은 천아숲길과 같은 설렘이나 즐거움이 조금은 부족하다. 아마 이미 많이 걸어온 나의 몸 상태가 마음까지 망가트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 표지판까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오늘은 그만 걷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하다. 내 마음속에서는 '나약한 자식아 얼마나 걸었다고!' 말하는 자아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자아가 서로 싸운다.


끝이 보인다. 무엇인가 참고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그 끝에 다다르게 된다. 이전에는 이러한 생각이 '끈기'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고집'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든다. 나의 상태를 잘 관찰하고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결과를 완수하면 '달성'이 되지만 내면을 다스리지 않은 목적 지향인 경우는 '아집'이 될 수 있다. 끈기를 가지고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길고 긴 레이스 가운데에서 내면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자세가 삶 속에서 필요하다.


끝. 2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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