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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문 Mar 07. 2022

제주의 저녁은 완벽하더라

제주도 이야기 #6

서귀포시에서 제주시로 넘어오는 날이다. 오늘도 일찍 일어나 둘레길을 걸어볼 계획이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하루 더 쉬어가기로 한다. 호텔 체크아웃 시간까지 여유롭게 쉬다가 282번 버스를 타고 여유롭게 이동하였다.


많은 곳을 둘러보는 여행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다양한 곳을 눈에 담으며 사진을 찍고 시간 대비 최대한의 효율을 얻기 위한 그런 여행. 인증샷을 위해 또는 자랑을 위한 그런 여행에서 이제는 완전히 그곳을 자체를 즐기며 잠시나마 주민이 되어보는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다. 때문에 숙소도 연박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조용한 동네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며 둘러보는 시간도 많이 할애하게 되었다.


브릭 게스트하우스

3박을 연박하기 때문에 숙소를 신중하게 골랐다. 사실 이제는 도미토리 형식의 게스트하우스는 선호하지 않게 되었고 그에 따라 지난 이틀간은 호텔에서 머물렀는데, 다시금 사람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마음에 게스트하우스로 찾아보게 되었다.


나쁜 후기가 거의 없는 곳을 발견하였다. 개인실을 예약하였는데 깔끔하게 정리된 방은 작지만 아늑했고 눈에 띄지 않는 부분 하나하나에 세심한 손길이 묻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게다가 기대 이상으로 친절하신 사장님 덕분에 이곳에서 한동안을 만족하여 머무르게 된다.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체크인을 하고 동네 주변을 둘러보기로 한다. 핫플레이스를 검색하기보다는 지도 어플을 켜서 근처 가까운 곳 중 갈만한 곳을 찾아보다가 예전에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은 아라리오 뮤지엄이 눈에 띄었다. 후기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다양한 시각과 생각을 할 수 있어요'라는 글이었다. 이번 여행 자체가 다양한 시각과 생각을 넓히기 위한 여행인 만큼 나의 상태에 있어서 아주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이곳으로 향했다.


작품들을 보고 작품에 관한 설명을 보면서 나는 그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조금 기괴하고 무서운 조형물들을 보면서 '예술의 세계는 정말 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많이 미흡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기 위한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예술, 아티스트의 영역을 조금은 이해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아직 그 깊이까지 가기에는 내공이 부족한 것 같다.


우연히 만난 낙조는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뮤지엄에서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밖으로 나와 아무런 계획이 없었던 나는 무작정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냥 바다를 보며 파도멍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걸어갔지만, 건물 숲을 지나 고개를 돌리니 의도치 않는 낙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주도에 올 때마다 이곳에서의 낙조는 평생 보아도 질리지 않겠다고 생각을 하는 편인데, 이렇게 기대하지 않은 시점에서 보는 낙조는 감동이 배가 된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이 어느 정도 합리적인 논리가 되어버린 세상이지만, 이곳에서의 저녁은 기대를 하던 하지 않던 감동이 크다.


상필

어릴 적 내 이름 석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인데, 모든 글자에 받침이 들어가 있는 까닭이다. 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은 흔한 듯 흔하지 않은데, 가끔은 이 흔하지 않은 이름이 좋다. 성까지 같은 동명이인은 만난 적이 없지만, 이름만 동일한 사람이라도 만날 때에는 괜스레 친밀감이 느껴진다.


비행기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재빠르게 카메라를 켠다. 무릎을 치면 발이 앞으로 나가는 신경작용처럼, 나에게는 비행기만 보면 카메라를 켜는 무조건 반사가 몸에 존재한다. 그 이유가 뭘까. 아마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것에 대한 설렘이 내 안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비행기를 타야만 진정한 여행은 아니지만, 한번 떠나면 쉽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측면에 있어서, 비행기를 타는 여행은 나에게 있어서 진정한 일상과의 분리감을 안겨준다. 조금이라도 힘들면 '집에 갈까?'가 아닌 힘들어도 쉽게 집에 오지 못하는 그런 여행에 있어서 나는 어느 정도 반강제적으로 여행을 완주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기를 쓴다는 점에서 이제 나에게 여행은 어느 정도 '일'의 궤도에 올랐다. 평생 지구 상의 모든 곳을 여행하며 얻은 인사이트를 글로 적고 같이 나누는 삶을 살고 싶지만 이러한 로망이 어디까지 계속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일단 여행하자. 


파도멍

잔잔하게 흐르는 파도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조용히 흐르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깊은 고뇌에 빠지기 일쑤이다. 조급함이 가득 찬 현재 나의 인생에 조용히 잔잔하게 흘러갈 수 있는, 파도와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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