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6
작품들을 보고 작품에 관한 설명을 보면서 나는 그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조금 기괴하고 무서운 조형물들을 보면서 '예술의 세계는 정말 깊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많이 미흡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기 위한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예술, 아티스트의 영역을 조금은 이해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아직 그 깊이까지 가기에는 내공이 부족한 것 같다.
뮤지엄에서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밖으로 나와 아무런 계획이 없었던 나는 무작정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냥 바다를 보며 파도멍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걸어갔지만, 건물 숲을 지나 고개를 돌리니 의도치 않는 낙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주도에 올 때마다 이곳에서의 낙조는 평생 보아도 질리지 않겠다고 생각을 하는 편인데, 이렇게 기대하지 않은 시점에서 보는 낙조는 감동이 배가 된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이 어느 정도 합리적인 논리가 되어버린 세상이지만, 이곳에서의 저녁은 기대를 하던 하지 않던 감동이 크다.
어릴 적 내 이름 석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인데, 모든 글자에 받침이 들어가 있는 까닭이다. 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은 흔한 듯 흔하지 않은데, 가끔은 이 흔하지 않은 이름이 좋다. 성까지 같은 동명이인은 만난 적이 없지만, 이름만 동일한 사람이라도 만날 때에는 괜스레 친밀감이 느껴진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재빠르게 카메라를 켠다. 무릎을 치면 발이 앞으로 나가는 신경작용처럼, 나에게는 비행기만 보면 카메라를 켜는 무조건 반사가 몸에 존재한다. 그 이유가 뭘까. 아마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것에 대한 설렘이 내 안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비행기를 타야만 진정한 여행은 아니지만, 한번 떠나면 쉽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측면에 있어서, 비행기를 타는 여행은 나에게 있어서 진정한 일상과의 분리감을 안겨준다. 조금이라도 힘들면 '집에 갈까?'가 아닌 힘들어도 쉽게 집에 오지 못하는 그런 여행에 있어서 나는 어느 정도 반강제적으로 여행을 완주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기를 쓴다는 점에서 이제 나에게 여행은 어느 정도 '일'의 궤도에 올랐다. 평생 지구 상의 모든 곳을 여행하며 얻은 인사이트를 글로 적고 같이 나누는 삶을 살고 싶지만 이러한 로망이 어디까지 계속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일단 여행하자.
잔잔하게 흐르는 파도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조용히 흐르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깊은 고뇌에 빠지기 일쑤이다. 조급함이 가득 찬 현재 나의 인생에 조용히 잔잔하게 흘러갈 수 있는, 파도와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