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탐방 프로젝트 #2
과유불급이라 하였던가. 과한 트레킹으로 인해 생전 처음 오금에 통증이 느껴진다. 첫날 트레킹으로 거진 20km를 걸은 후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너무 자만하여 가볍게 생각했던 순간이 큰 통증으로 이어졌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걸었지만, 얻은 것은 통증뿐이었다.
조금은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목표지향적인 삶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나를 망가트리면서까지 목표를 탈환하는 것은 미련한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다시 걸어가 보자. 이 길도, 내 삶도.
오늘은 한라산 둘레길의 마지막 두 코스를 걸어보기로 한다. 이곳들은 거리도 길지 않고 휴양림과 코스를 공유하여 조성이 잘된 길로 이루어진 곳들이었다. 너무 이르지 않은 아침 버스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
제주에는 이름이 생소한 지명이나 지역들이 많다. 제주 방언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한 이름들이 낯선 즐거움을 준다. 낯선 즐거움은 두려움과 큰 차이가 없지만,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세로 인해 두려움이 될 수도,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벌어진 결과에 순응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즐거움과 성장이 될 수 있지만, 두려움으로 남는 사람은 후회와 책망으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즐거움으로 가득 찬 삶이 되길 바란다. 항상 웃으며 하하호호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결과도, 저러한 과정도 모두 '허허, 그럴 수 있지'라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즐거움으로 가득 찬 삶이 아니겠는가. 조급한 마음으로 후회와 책망을 일삼는 삶이 아닌 템포를 조금은 낮추며 여유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이곳은 전에 걸었던 한라산 둘레길의 1-2구간과 다르다. 같은 숲길이지만 이곳은 데크길로 조성된 구간이 주를 이루었다. 때문에 조금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잘 닦인 이 길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조금 거칠지만 다이나믹한 길이 잘 맞을 수 있다.
조릿대길에는 조릿대가 정말 많다. 마치 '이곳은 내 구역이요'라고 말하듯이 조릿대가 가득 넘치도록 많다. 조릿대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 같아서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지만 이내 이 지루한 길에 싫증이 나기도 한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생각과 감정의 흐름이 걷는 동안 이루어진다. 걷는 여행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해답을 찾아줄 수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다양한 생각의 흐름 가운데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아주 작은 소리를 찾아줄 수는 있다. 뚜벅뚜벅 걷다 보면 분명 무엇인가 얻을 것이다. 체력이든지, 생각이든지.
목표했던 반(10km)을 걸었더니 벌써 정오가 되었다. 더 걸을까? 그만 걸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실수로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점과 무리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생각을 바탕으로 오늘은 그만 걷기로 한다.
분명 나는 하루 20km 이상씩 꾸준하게 걷기를 원했다. 그렇게 한라산을 한 바퀴 다 돌면 '무엇인가 얻을 수 있겠지'라는 자그마한 소망도 있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끈기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만 걷기도 중요하다. 무리해서 걷다 보니 얻는 것은 다리의 통증뿐이었던 것처럼, 때로는 욕심을 거두고 과감하게 멈출 수도 있어야 한다. 인생길에서 과감하게 멈춰야 할 순간인지, 꾹 참고 달려야 할 타이밍인지를 스스로 잘 돌보아 볼 수 있을 때에 누구보다 건강하게 오랫동안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