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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리 Aug 10. 2020

그래도, 가족은 힘이 세다!

연극 <가족의 탄생> 리뷰_2020년 7월 28일 8시 공연

‘가족’을 소재로 한 이야기에 매료되지 않을 관객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가족은 존재하고, 애잔한 가정사 하나씩은 감추고 살아간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축복인 건지 불행인지는 모를 일이다. 아무튼 가족 소재는 타고난 보편성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특히나 사랑이나 우정이 어려운 나와 같은 관객에게 있어 가족 이야기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다. 유수의 작품을 통해서 어머니의 사랑에 눈물짓고, 아버지의 희생에 또 눈물짓고, 형제, 자매의 화해에 웃음 짓는 경험이 빈번했다. 아마도 공감과 눈물의 척도로 평가하자면, 가족 이야기는 가장 위대한 가치를 지녔으리라.


그러나 이 위대함은 언젠가부터 독이 되어 돌아왔다. 보편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함이 되어 관객에게 뻔한 감상만을 안겨준다. 대부분의 가정사가 그러하듯, 대개 비슷한 형태로 보지 않아도 이야기가 유추되고, 절정에서의 최루 역시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외려 작품보다 현실의 내 가족 이야기가 더 절절하고, 현실에선 눈물도 사치일 정도로 더 팍팍하다. 때론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극적인 화해나 희망적 결말이 허무맹랑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결말이 없는 현실의 가족 이야기는 비극이라, 그 어떤 작품보다도 강력한 소구력을 지닌다.


연극 <가족의 탄생>은 여느 가족 이야기처럼 양단의 특징을 모두 담는다. 연극은 아버지와 사 남매의 갈등과 화해를 담담하게 그린다. 부인을 여위고 엄격하게 자식을 기른 아버지, 무뚝뚝한 장남과 철없는 둘째 아들, 밝고 유쾌한 셋째 딸과 그들의 배필, 그리고 지체장애를 가진 막내아들까지, 이들은 어머니 기일 날에 모인 자리에서 서로 간에 쌓인 응어리를 풀며 진정한 가족으로 탄생하게 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아들들의 원망, 성격이 다른 형제간에 앙금, 그리고 눈물의 화해는 강력한 보편성으로 관객의 이입을 이끈다. 그래, 진정한 가족이 되는 과정은 저렇게 지난하지. 관객 각자의 가정사를 상기하며 자신의 감정을 대입하고 해소하기에 무난하다.


그러나 감정의 정화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나 담담하다는 것이 문제다. 연극은 자식들 하나하나를 조명하며 각자 살아가는 형편과 고민을 드러내고, 간간이 플래시백 장면을 섞어 아버지와 얽힌 상처까지도 나타낸다. 인물들의 사정을 깊이 다루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극 중후반부까지 인물들의 전사나 관계 같은 배경 이야기에만 치중한다. 갈등 요소 하나 없이, 극의 흐름에 변화가 없는 내러티브는 관객의 이목을 계속 끌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후반부 격정의 화해 장면과 반전 장치가 존재하지만, 그것 역시 너무 전형적이고 눈치가 빠른 관객이라면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수준이다.



냉철하게 얘기해서 내러티브만으로는 새로울 것도, 흥미로울 것도 없는 약점이 많은 극이다. 주요 인물인 장남과 둘째 아들의 이야기가 메인 플롯으로 용해되지 않고, 그러다 보니 관객은 엉뚱하게도 부차적 플롯인 딸과 남자 친구의 소개팅 이야기에 더 반응하게 된다. 주객이 전도된 이야기는 결코 좋은 구조의 극은 아니다. 이러한 잔잔한 내러티브를 갖는 극에서 배우의 역량은 중요하다. 배우의 표현과 앙상블로 충분히 다이내믹함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각 커플의 이야기가 릴레이식으로 연결되다가 후반부 집에 모이는 에피소드에 이르러 모든 인물이 만나 극을 마무리한다. 각 커플의 장면과 이음새를 통해서 연극 전체의 리듬과 역동성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각 장면마다 다른 분위기와 무게, 타이밍과 속도, 이미지와 질감을 갖아야만 한다. 개인적으로는 장남 내외의 에피소드가 진중함으로 전체적인 무게를 잡아준다면, 딸과 남자 친구의 에피소드는 발랄함으로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둘째 아들 내외의 에피소드는 앞선 두 성질의 중도적 입장에서 극을 끌고 가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아들 내외의 에피소드와 배우적 역량이 가장 책무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내가 본 회차에서 둘째 아들 내외 역할의 배우들은 무거운 책임을 완수하기엔 연기적 기량이 부족했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구하는 것은 좋으나 시종 힘을 뺀 행동과 대사는 안 그래도 잔잔한 내러티브에 답답함을 얹는다. 장면 중간중간 충분히 관객의 눈과 귀를 자극할 만한 요소들이 있음에도 잘 살리지 못하고, 내추럴함 안에서도 주의를 집중시키는 포인들을 만들 수 있는데 완급조절에 실패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가장 중요한 초반 장면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극의 리듬을 형성시키는 초반 15분을 축 늘어트리는 바람에 뒤에 이어지는 장남 에피소드의 진중함도 희석시키고, 전체적인 극의 리듬감과 앙상블을 쳐지게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장남 내외와 딸과 남자 친구 역할의 배우들이 제임무를 완수하며 연기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장남 역할의 배우는 감정과 기술이 적절히 조화된 연기력으로 극의 무게감을 확실하게 잡아준다. 그의 연기는 마지막 격정의 화해 장면에서도 빛을 내는데, 울분의 감정을 포효하는 와중에도 적절하게 소리를 통제하여 관객의 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감정을 전달한다. 날감정만을 쏟아내는 배우하고 비교되어 더 돋보인다. 그의 아내 역을 맡은 배우도 절제된 감정 표현과 정적의 움직임으로 극에 여유를 찾아주고, 딸 역할의 배우는 다듬어지지 않은 연기가 외려 배역에 생동감으로 치환돼 생기를 불어넣는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가장 돋보였던 장면은 모든 인물이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가는 장면이다. 아직은 서로가 낯선 가족 구성원들의 불편함과 그래도 함께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는 설렘이 공존한다. 연극은 무대의 모든 요소들(조명, 음향, 무대장치, 배우들의 연기)을 동원하여 이들의 생생한 감정을 표현한다. 슬로모션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무대 장치를 활용해 차 안 공간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아이디어로 볼거리를 충족시킨다. 무엇보다 고향을 내려가는 각 커플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들의 이야기와 감정 한데 모아 강력한 설렘을 응축시켜 관객에게 판타지를 전달한다. 진정한 가족으로의 탄생을 예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극이 끝날 즈음, 커튼콜이 시작될 때, 눈물을 흘리는 관객을 다. 역경을 딛고 끝내 화해하는 가족의 모습이 보여주는 판타지적 메시지가 관객의 마음을 두드렸을 터다. 전형성과 무미건조한 내러티브라는 조건에도 연극 <가족의 탄생>이 갖는 힘이다. 연극의 희망적 메시지는 비극인 현실에 꽤 묵직한 울림을 안겨준다. 이는 뻔하지만 강력한 가족 이야기의 저력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목도하지 못할 가족의 화해와 탄생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 넌지시 추천한다. 나름의 진정성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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