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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Aug 11. 2018

쩌우 까우가 사라졌다

trầu cau

지금은 자취를 감췄지만 예전에는 거리에서 할머니들이 입술이 빨갛게 물들도록 뭔가를 입에 넣고 씹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런 광경을 처음 목격한 관광객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백이면 백 놀라 자빠지기 마련이었다. 씩 하고 웃는 할머니의 치아와 혀가 온통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은 섬뜩하다 못해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다. 

출처 https://www.thahara.com

‘Betel Chewing’라고 불리는 ‘구장잎 씹기’는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습이다. 나라마다 부르는 명칭은 달라도, 인도에서부터 대만은 물론 일부 중국에까지 고르게 퍼져있다. 석회가루를 바른 구장잎에 빈랑열매를 넣고 씹는 것이 기본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시아, 태국 등지에서는 석회암 대신 조개를 갈아서 넣기도 하고, 인도, 미얀마, 라오스는 지역에 따라 향신료를 추가한다.


구장잎 씹기의 묘미는 석회와 구장잎, 빈랑 열매가 침을 만나 함께 뒤섞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반응에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빨간 천연색소가 나온다. 죠스바 스무 개를 먹는 효과와 맞먹는다. 오미자처럼 단맛, 매운맛, 쓴맛, 신맛을 차례로 느낄 수 있고, 가벼운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기와 달리 건강식품으로 인식되어 있어, 담배가 퍼지기 전, 그 역할을 했다. 여러 명이 둘러앉아 석회를 나눠 바르고 구장잎을 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베트남에서는 빈랑나무 열매와 구장잎을 통칭해서 ‘쩌우 까우(trầu cau)’라고 한다. 특이하게 결혼예물 필수 품목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에 얽힌 설화가 재밌다. 우리나라에는 ‘쩌우 까우 이야기’란 동화로 소개되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쌍둥이 형제와 형의 아내, 그렇게 세 명이 한 집에 살았다. 이런 이야기가 다 그렇듯이 형제의 우애는 돈독했고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무꾼이었던 두 사람은 작업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누가 더 먼저 땔감을 구해오나 내기를 하곤 했다. 보통 형이 먼저 집에 돌아오곤 했는데, 그날은 동생이 먼저 돌아오게 되었다. 형수는 동생을 남편인 형으로 착각해서 꼭 껴안았다.(아이들 버전이라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음을 알린다) 이를 목격한 형은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당연히 형제 사이에 균열이 생겼고 갈등은 증폭되었다.(동화에서는 동생이 가출한 것으로 나오지만, 역시 아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강가에서 쓰러져 죽은 동생은 석회석 바위가 되었다. 형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바위 옆에 쓰러져, 까우나무가 되었다. 이를 본 아내 역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 까우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쩌우’라는 덩굴식물이 되었다. 


훗날, 사람들은 형제와 형수가 죽어서 생긴 덩굴 잎과 나무 열매, 그리고 돌가루를 함께 씹으면서 형제간의 우애와 부부애를 기리게 되었다. 이 얘기를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왜 이 스토리가 백년해로를 기약하는 신혼부부의 상징으로 쓰였을까' 하는 점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삼각관계에 치정 문제가 걸린 순탄하지 않은 결혼 이야기인데 말이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이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점이 동화와 달리 동생으로부터 시작한다. 평소 형수를 속으로 흠모하던 동생은 시기심에 실수로 형을 죽이게 된다. 슬픔과 두려움도 잠시, 사랑에 눈이 먼 동생은 형을 대신해 형수와 살기로 결심한다. 형을 흉내 내는 동생에게 형수는 깜쪽같이 속는다.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형수는 산길에서 우연히 남편의 형상을 한 바위를 본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형수는 동생의 뒤를 캐고, 결국 그가 남편이 아닌 형을 가장한 동생임을 알게 된다. 한때 남편이었던 형, 그리고 오랫동안 남편이었던 동생 사이에서 갈등하던 아내는 시름시름 앓다가 바위 옆에 쓰러져 죽는다. 그 자리에 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한편 형수를 찾아나섰던 동생은 바위와 나무를 발견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덩굴이 된다. 


어린이 버전보다는 수긍이 가는 스토리지만 쩌우 까우가 결혼예물로 활용되는 것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동생의 음모, 형의 불행,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희생된 아내. 이 세 사람의 관계 속에 결혼의 어떤 단면이 숨어있는지 알기 어렵다. 모른 척하고 살라는 뜻인지, 아니면 비록 죽어서라도 기어이 하나가 되라는 뜻인지. 불행한 결말에 뒷맛이 개운치 않다. 확실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베트남이나, 한국이나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다는 것이다. 

구장덩쿨과 예물로 포장한 빈랑열매

이 이야기를 듣고 처음 든 생각은 베트남 사람들의 기질이었다. 그들은 뭐든 종합하는 것을 좋아한다. 쩌우 까우 이야기도 카인과 아벨의 스토리에 쌍둥이 모티브와 리플리 증후군을 뒤섞어 놓았다. 좋은 것은 일단 받아들인다. 민족성이 그런지 몰라도 거부감이 별로 없다. 사교적이고 개방적이다.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종교다.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천주교 다 믿는다. 우리가 모르는 종교까지 합하면 아마 지구 상에서 가장 많은 종교를 가진 나라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상호 간에 분쟁이나 비방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옆 건물에 서로 다른 종교시설이 나란히 위치하기도 한다.


이색적인 종교로는 호아하오교, 까오다이교, 여신숭배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 까오다이는 호치민에서 멀지 않은 따이닌에 본거지가 있어 직접 예배 과정을 볼 수 있다. 건물부터 이채롭다. 두 개의 탑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얼핏 보면 교회 같기도 하고, 이슬람 사원 같기도 하다. 왼쪽 탑은 여성을, 오른쪽은 남성을 상징한다. 가운데 크게 그려진 눈을 마주하면서 교회당으로 들어서면 천국으로 가는 9개의 계단을 만날 수 있다. 예배당 가운데에 예수, 마호메트, 고타마, 공자 등이 함께 있는 초상화가 걸려있다.(교리 자체가 각 종교의 좋은 점만을 골라 혼합한 터라 ‘종교의 엑기스’라고 불린다.) 그 아래에 건물 외관과 마찬가지로 눈이 그려진 천구가 있다. 미화 1달러 지폐 뒤편에 있는 그림과 흡사해서 모방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꽤 긴 시간 예배 과정을 지켜보았는데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새로운 것은 없었다. 다만 남녀가 각각 분리되어 행사가 치러지는 것이 특이했다. 출입하는 문이 나뉘어 있어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남녀가 따로 들어가야 한다. 안에서는 만날 수 있으니, 출입만 구분할 따름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베트남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변형한다. 그러니 원전과 다르다, 고 주장한다. 어느 것도 그대로 베트남에 흡수되지 않았다. 수많은 외세의 침입에도 지금까지 고유의 문화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다.


* 구장잎 씹기를 음양오행에 따른 동양의 문화로 보는 시각이 있다. 석회의 흰색, 구장잎의 청색, 빈랑 열매의 황색, 씹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적색과 결과로써 치아에 착색되는 흑색까지 화학적인 반응에 따른 색의 변화에는 세상과 인생의 수수끼가 담겨있다. 어쩌면 결혼예물에서 쩌우 까우가 필수인 이유일 것이다.



*구장잎 씹기 참고 영상 

*타이틀 이미지 출처 www.illumelation.com

위 글에서 베텔이 담배, 술, 카페인 음료 다음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환각 물질이라고 소개된다. 또한 매우 강력한 발암물질임을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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