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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Aug 25. 2018

바 가 하이 타이

눈치 없는 커플과의 판티엣 동행기

ba cá hai tay. 

세제 이름이 아니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베트남 속담이다. 양 손에 물고기 세 마리란 뜻으로, 지나치게 욕심이 과할 때 쓰는 표현이다. ‘두 마리의 토끼를 쫓는다.’쯤 된다. 그런데 ‘바 가 하이 타이’에는 또 다른 뉘앙스가 숨어있다. 우리 식으로 ‘양다리’에 해당하는 문어발식 과잉연애자를 가리킨다.

칸 Kanh은 베트남인 중에 호아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다.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광고회사에 다니다 내가 있는 회사로 입사했다. 투박한 외모에 모난 구석 없이 성격마저 쿨해서, 어디서나 잘 어울리는 직원이었다. 유달리 술을 좋아해 항상 저녁에는 술집으로 퇴근했다.


무척 더운 여름이었다. 호치민에서 몇 달을 보낸 터라 살짝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주말을 앞두고 근교 여행을 고민하던 무렵에 판티엣이 눈에 들어왔다. 꽤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호치민에서 판티엣은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대중교통이 부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하루 묵을 숙박업소도 필요했다.


나는 칸에게 차량과 호텔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일은 발이 넓은 칸이 전문이었다. 적당한 가격에 운전사가 딸린 토요타 승용차와 리조트가 바로 수배되었다. 여행준비로 가슴이 설레던 금요일 오후, 칸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슬며시 다가왔다.

“내일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잠자리는 따로 알아볼게.”


부부의 여행에 꼽사리를 끼겠다는 뜻이었다. 단칼에 안 된다고 할 수 없어서 ‘여자 친구와 같이 오면 생각해볼게.’ 여지를 남겼다. 칸의 지갑에서 보았던 대학생 여자 친구의 사진이 떠올랐다. 어느 젊은 여자가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 노땅부부와 여행을 떠나갔는가. 


그게 실수였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 법이다. 눈치도 없는 녀석이 그날 밤 ‘여자 친구의 승낙을 얻었으니 같이 갈 수 있게 됐다.’며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올 때까지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할 수 없어서 잘됐다고 응한 뒤에 전화를 끊었다. 아내가 싫은 내색을 비쳤지만 ‘어차피 차량의 공간도 남는 데다 숙소도 따로 구했으니 오가는 시간만 조금 불편하면 되지 않겠느냐’ 설득했다.(오가는 시간이 그리 길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음날 아침 일찍, 집 앞으로 칸이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타났다. 인사를 나누는데 뭔가 이상했다.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긴장감이 여자에게서 풍겨왔다. 우선 복장부터 압도적이었다. 그야말로 하와이 해변에서나 어울리는 탱크톱에 숏팬츠를 입고 있었는데, 당시 베트남 여성들의 수녀식 패션(햇빛에 탈까봐 병적일 정도로 노출을 삼가는 옷차림)에 비하면 과감하다 못해 파격이었다. 게다가 실물로 본 그녀는 칸보다 나이가 훨씬 더 들어 보였다. 그새 인생의 모든 우환이 한꺼번에 겹치지 않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이와 이름을 들은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알던 것과 차이가 많았다. 대학생도 아니었고, 직업도 없이 집에서 쉰다고 했다. 남성이 아니면서, 집에서 쉰다는 베트남 여성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제외하고 본 일이 없었다. 그녀는 확실히 우리가 그때까지 베트남에서 보아오던 여성들과 확연히 달랐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10분 안에 절친이 되는 친화의 화신인 아내도 그녀에게는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놀란 것은 다음이었다. 배낭을 넣기 위해 트렁크를 열었다가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그녀의 짐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고작 1박의 여행에 무슨 짐이 그리 많은지, 달랑 배낭 하나에 들어간 우리의 짐이 무색했다.

이러저러한 내막도 모른 채, 출발을 서둘렀다. 칸이 조수석에 냉큼 올라타고, 그의 여자 친구와 우리 부부가 뒤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나에겐 배낭이 있었다.(갈 곳을 잃은 배낭은 나의 무릎과 아내의 발밑과 바닥을 굴러다녔다.) 그녀는 차에 타자마자, 가져온 테이프를 차 카세트에 꽂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잠시도 쉬지 않고 시종 칸과 수다를 떨었다. 잠시 후, 그들의 대화에 운전사까지 가세했다. 한국인 부부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큰 소리의 베트남 노래와 베트남 말이 차 안의 모든 공간을 장악했다. 그것은 조용하게 주말을 보내려던 우리부부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였다. 아내와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우리 부부가 그들의 들러리가 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내렸을 때, 나는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고작 1박 2일의 짧은 여행에서 1년을 거리에서 보낸 부랑자처럼 녹초가 되어버렸다. 입맛도 의욕도 없었다. 같이 점심을 먹는데 무슨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지루하리만큼 긴 시간을 달려 오후 늦게 판티엣에 도착했다. 판티엣은 훌륭했다. 리조트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바다와 해변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게 온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수다 커플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안도감이 제일 컸다. 

하지만 해방감을 가지기엔 너무 일렀다. 체크인하는 중에 뒷골이 서늘해졌다. 우리 방 바로 옆에 수다 커플의 방이 배정되었다. 다른 곳에 묵을 예정이었던 칸은 여자 친구를 위해 특별히 숙소를 바꾸는 과욕을 부렸다. 


뭔가 알 수 없는 중압감이 밀려왔다. 무심하게 치는 파도가 그때부터 화살처럼 따가웠다. 막 짐을 풀고 쉬려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칸이었다.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손사래를 치며 극구 괜찮다고 거절했으나, 점심도 얻어먹었겠다, 차에 공짜로 동승도 했겠다, 한사코 저녁을 대접하겠다며 칸은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리조트에서 가까운 식당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잠깐 앉았다가 일어서려고 했는데, 저녁식사가 술자리로 이어졌다. 그 자리는 칸의 여자 친구가 주인공이었다. 가슴이 파인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했다.(트렁크에 가득했던 짐은 모두 옷이었다. 패션쇼도 아닌데, 공간이 바뀔 때마다 그녀가 입은 옷도 달라졌다.) 그녀는 분위기를 장악하지 못하면 못 견디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대단한 에너지의 소유자였다. 간드러진 웃음과 흥에 겨워 내는 감탄사, 못마땅한 것에 대한 분노, 그러다가 갑자기 슬픈 얼굴로 칸에게 안기기도 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깔깔 웃으며 어깨춤을 췄다. 우리 부부는 연극을 보러 온 관객마냥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가 자리 비운 틈을 타 칸이 사정을 털어놓았다. 둘은 어릴 적 친구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작은 극단 소속의 3류 배우였다. 4년 전에 대만 사람과 눈이 맞아 대만으로 시집을 갔다. 어떤 이유로 최근 이혼을 결심하고 수속을 밟기 위해 잠시 귀국했다. 아이가 있었다. 매일 눈물과 술로 괴로워하는 그녀를 위해 위로 차 함께 오게 됐다는 진부한 스토리였다. 


“사진 속의 그 여자 친구는?”

내가 물었다.

“헤어졌어.”

칸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언제?”

“한 달 전에.”

“한 달 만에 새 여자친구?”

불콰해진 칸의 얼굴이 조명에 흔들렸다. 

“얘는 여자가 아니라, 친구지. 오래된.”

프렌드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날 밤. 우리 부부는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잠을 설쳤다. 다음날, 베란다에서 만난 칸에게 물었다.

“이봐. 밤새 친구랑 격투기라도 한 거야?”


칸은 웃기만 했다. 우리는 리조트 바다에서 오전시간을 보내고 근처 사막으로 갔다. 모래썰매를 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오후에 호치민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동안 우리부부는 간밤에 못 이룬 잠을 보충했다. 체력이 고갈됐는지 그녀도 더 이상 떠들지 않았다.


그 일로 칸은 두고두고 나의 놀림감이 됐다. 

“친구랑 그 짓을 하다니. 카사노바 같으니라구.” 

칸의 항변은 이랬다. 친구랑은 할 수 있다. 각각의 가정이 있다면 모를까, 자신도 솔로, 그녀도 솔로(?). 무슨 문제냐? 그때 바람둥이라는 표현이 베트남에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칸을 통해 베트남의 성문화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조혼 문화가 남아있는 데다, 개방된 성의식으로 일찍 성에 눈을 뜬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평야의 속성’이라고 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해 떨어지면 뭘 하겠어? 산이나 있어야 은밀하게 하지. 고개만 들면 다 보이는데, 그러니까 다들 그쪽으로는 눈감아주는 게 예의야.”

당시 언론엔 급격하게 증가하는 베트남의 이혼율이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던 것 이상이었다. 칸은 끝끝내 자신이 ‘바 가 하이 타이’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모든 카사노바가 그렇듯 자신은 오로지 한 번에 한 명의 여자만 사귄다고 변명했다. 그 뒤로도 칸의 버릇은 여전했다. 판티엣을 다녀온 한 달 뒤, 그가 새로운 여자 친구를 사귄다는 얘기가 들렸다.


칸에게 물었다. 

“대체 넌 어떤 재능이 있는 거야?”

그는 부자가 아니고, 미남도 아니며, 나이도 어리지 않았다. 아무리 보아도 그가 여자를 홀리는 매력을 알 수 없었다. 그가 말했다. 술과 춤, 노래, 유머. 그리고 매너. 이 다섯 가지가 남자의 매력이라고. 그는 나이트클럽이나 가라오케에서 여자를 사귀었다. 긴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나름 철칙이 있었다. 

“여자가 싫증나 하면 떠나는 게 남자의 매너야.”

이혼한 여자 친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헌신적인 자세로 노력하는 그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나로서는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번 여행 중에 모르고 잡은 호텔이 호치민에서 루프탑바로 유명한 곳 옆이었다. 새벽 2시까지 머리를 흔드는 음악소리가 들렸다. 입구에 기도로 보이는 양복차림의 남성들이 진을 치고, 외국 남성을 유혹하러 온 베트남 여성과 베트남 여성을 꾀러 온 외국인들로 초만원을 이뤘다. 아직까지 칸이 그런 곳을 다닐 리 만무했지만 어쩐지 바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봐. 바 가 하이 타이. 요즘도 잘 돼 가?”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겠지.

“무슨 소리야? 애 재우고 나오느라 놀지도 못했어. 애 깨기 전에 들어가야 하니까 아는 척하지 말라구.”

다 변했다 해도 끈적거리는 유머는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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