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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Apr 13. 2019

하나가 되는 경이로움

캐논 AE-1

그동안 내 손을 거쳐 간 카메라는 대략 20대가량 된다. 워낙 손이 험해 분실하거나, 망가진 것이 대부분이고 부득이 중고로 되판 것도 있었다. 필름 카메라보다는 디지털카메라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돈만 모았어도 집 한 채는 마련했을 텐데, 빌어먹을 장비병(불치병)에 걸려서 인생을 쫑 내다니….


참극의 시작은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카메라를 사주면 공부를 열심히 할 줄 알았던 아버지의 착각이 빚은 실수였다. 캐논 AE-1. 렌즈 뚜껑에 동계올림픽 기념 로고가 새겨진 이 멋진 녀석은 상단에 은색 프레임, 바디에 검은색 정장을 착용했고, 묵직한 무게와 중후한 멋이 풍기는 세련된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저 필름 끼우고 셔터만 누르면 다 사진이 되는 줄 알았던 어린 시절의 내게 AE-1은 훌륭한 입문서이자, 교보재였다. 셔터를 살짝 누르면 파인더 오른쪽에 붉은색 게이지가 움직이는데, 이때 빛의 양과 속도를 자동으로 계산해서 최적의 노출을 알려주도록 설계되었다. 이름에서 보여주듯이 AE, 즉 Automatic Exposure 자동 노출 카메라다. 


듣기로는 AE-1이 없었다면 후속작인 A-1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완전 자동카메라의 등장은 물론, 디지털카메라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과장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AE-1이 광학기술에 새 지평을 연 것은 분명하다.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칩이 탑재된 카메라가 바로 이 모델이다. 직접 주입 논리회로(Integrated Injection Logic)라는 생소한 전자광학 기술이 적용되었다. 이 기술은 더 이상 카메라가 정밀공업과 광학만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전자분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로써 조리개 값과 셔터에 따른 빛의 비교 연산, 노출 제어까지 아무런 기초 지식이 없이도 사람들은 누구나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노출 하나 해결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로버트 카파’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AE-1과 친구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필름에 빛을 가두는 촬영만큼, 빛을 유지하는 현상도 중요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사진반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나는 그 친구의 만류를 무릎 쓰고 집 지하실에 독자적인 암실을 차렸다. 광산처럼 연탄재가 펄펄 날리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작업실이었다. 필름을 현상해서 인화지에 정착하는 일련의 과정은 빛을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온도도 중요하다. 나는 매일 밤 자발적으로 지하실에 감금되어 실패를 거듭했다. 그런 생활은 약품 냄새를 견디지 못한 엄마가 강제로 철거할 때까지 몇 개월 간 계속됐다.


손 떨림 또한 골칫거리였다. 수전증도 아닌데 인화된 피사체는 언제나 흔들려서 나왔다. 빠른 셔터보다 느린 셔터에서 발생하는 문제였다. 반셔터 상태에서 온셔터로 넘어가는 힘의 완급조절이 관건이었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연습이 필요했다. 바둑알을 렌즈 위에 올려놓고 군대에서처럼 격발 연습을 했다. -다른 분야와 다르게 사진은 힘이 왕성한 젊은이보다 연륜이 쌓인 사람의 작품이 좋다. 힘과 재기로 하는 분야가 아니다.


숨을 참고 온 신경을 손끝에 모으고 있으면 어디선가 방해자가 나타났다. 기르던 개가 말썽을 일으키거나, 외판원이 초인종을 눌렀다. 아랑곳하지 않고 이중노출, 초점, 심도에 대해 하나씩 깨우치면서 나는 AE-1과 한 몸이 될 수 있었다. 카메라가 내 눈의 연장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는 몸에 전율이 왔고, 머리에 그린 장면이 인화지에 고스란히 담길 때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잠시 미놀타와 올림푸스로 갈아타긴 했어도, 거의 AE-1이 내 전투력의 핵심 무기였다. 그래서 당시에 찍은 사진에는 실력의 편차가 드러난다. 입학식보단 졸업식이, 첫 번째 해외여행보단 두 번째 해외여행이, 그리고 결혼과 함께 재로 사라진, 첫 번째 여자 친구보단 세 번째 여자 친구의 사진이 훨씬 좋다.


하지만 그렇게 쌓은 사진 실력은 디지털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제 노출, 포커스는 말할 것도 없고, 색보정까지 알아서 해줄 뿐만 아니라, ISO 감도에 대해 몰라도 누구나 ‘쨍’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내 딸은 소니 사이버샷을 장난감처럼 다루면서 전위적인 예술작품을 매일 수십 장씩 쏟아낸다. 필름 한 통 사기 위해 엄마를 등쳐야 할 이유도, 수고도, 명분도 없다. 당연히 암실도 필요 없다. 기술의 발달은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경계를 허물었고, 누구의 말처럼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은 지식이나 실력이 아니라, 태도와 정신인 것 같다.


2007년 겨울, 캐논 AE-1, 리코 R1, 니콘 쿨픽스 3500, 이렇게 카메라 세 대를 거느리고 북경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게 AE-1과 이별 여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동안 들인 정을 생각하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놈이었다. 며칠 뒤, 유리창에서 왕푸징으로 이동하는 길에 AE-1이 어떻게 됐는지 짐작될 만한 일을 겪게 됐다.


아내와 나는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아내가 갑자기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의 손이 뒤에서 아내와 내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아내의 외투에 꽂힌 쿨픽스를 잡아 빼려다가 딱 걸린 것이다. 돌아보니 멀쩡하게 생긴 놈이 서 있었다. 놀라운 건 녀석의 반응이었다. 그는 스트랩을 손에서 놓지 않고 버젓이 웃고 있었다. ‘햐~ 내가 걸리는 날이 다 있네.’ 하는 능청스러운 얼굴이었다.


아내의 비명, 내 욕설에도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물건을 되가져가려는 듯이 카메라의 스크랩을 태연하게 잡아당겼다. 거리 한복판에서 도둑놈과 우리 부부 사이에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구경만 할 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외국인 하나쯤 잘못되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잠시 뒤, 그 녀석이 뻔뻔한 이유를 알게 됐다. 주위에서 일행으로 보이는 대여섯 놈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간격이 점점 좁아졌고 다급해진 내가 발길질을 하자, 녀석이 스트랩을 놓았다.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소매치기는 가만있고 피해자가 도망치는 게 이상했지만, 아내까지 있는데 괜히 봉변이라도 당하면 큰일이었다. 한참 벗어나서 생각해보니, 차라리 쿨픽스를 보내고 AE-1을 돌려받는 게 낫겠다 싶었다. 가격으로 치면 손해였지만, 어디 추억이 돈으로 환산할 가치인가? 모두 한통속일 테니, 제법 합리적이고 타당한 거래였을 것이다. 


나중에 이 일을 아이들에게 들려줬다. 나는 군대에서 익힌 태권도의 현란한 발차기 기술에 대해 떠들었다. “그때 왕푸징 거리에 있던 중국 사람들의 얼굴을 결코 잊을 수 없어. 모두 아빠의 발차기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니까. 중국 사람들이 제아무리 쿵푸 고수라 해도 태권도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더라.” 그러나 아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은 사뭇 달랐다. “아빠가 새파랗게 질려서 소를 내쫓듯이 워워거리기만 하는 거야. 발차기? 펭귄이 발을 들어 파닥이는 것을 발차기라고 한다면야. 무서운데 또 얼마나 웃기던지.”


어떤 사물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내 안에 장착된다. 이런 경험이 흔한 것은 아닌데, 내 경우엔 카메라가 그랬다. 내가 웃으면 카메라가 웃었다. 내가 울면 카메라가 울었다. 그러더니 어느 때부턴가 카메라가 울면 내가 울고, 카메라가 웃으면 내가 웃었다. 하나가 된다는 건 감정을 공유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내가 아닌 다른 개체를 통해 보고, 통해 듣고, 통해 말하는데, 내 것과 다르지 않다. 


너무 그리움에 사무친 나머지,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 AE-1을 중고로 구입했다. 필름을 사용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서너 번 찍고 말았지만, 가방 속에 깊숙이 넣어두고 가끔 오래전 애인 꺼내보듯 한다. 사진이 텍스트보다 흔한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옛 애인의 체취가 그리울 때가 있는 법이다.     


▶1937년에 설립된 캐논의 본래 이름은 콰논(Kwanon)이었다. 불교의 관음보살에서 따온 음독을 그대로 쓰다가, 자신들이 듣기에도 우스꽝스러웠던지 1947년에 Canon으로 변경했다. 초기에 생산된 제품들은 라이카를 흉내 낸 것이 많았다. 카메라 시장에서 니콘은 렌즈를, 캐논은 정밀 광학 기술을 선도해왔다. 일부의 주장이긴 하지만 소니와 니콘을 결합한 것이 캐논이라는 평가가 있다. 캐논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보니, AE-1은 1976년 4월에 출시되었다. 출고가가 50미리 렌즈를 포함해 8만 1천 엔. 굳이 지금 돈으로 환산하지 않아도 어마어마하다. 쩝쩝.


▶▶라이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빨간 코를 향한 내 욕망은 땅에 묻히기 전까지 꺼지지 않을 것 같다. 빌어먹을, 이래서 불치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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