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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Apr 20. 2019

오래 보면 사랑하게 된다

손톱깎이

사물을 사용하는 것은 연애와 같아서,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해 상대가 떨떠름하게 반응하기도 하고, 어떤 건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사용하게 된다. 쓰기 전엔 좋았는데 쓰다 보니 내 취향이 아닌 경우도 많고, 처음엔 별로였는데 쓰면서 진가를 발견하기도 한다. 또 어떤 건 억지로 정 붙이고 살다가 이별한 후에 비로소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도 한다.


인간의 신체 중에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 자라는 곳은 두 군데밖에 없다. 털과 톱이다. 이 둘은 유일하게 다른 기관에 비해 쓸모가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털 중에서는 머리카락이, 톱 중에서는 손톱이 빨리 자란다. 이런 특성들 때문에 사람들은 손톱과 머리카락을 신성시해왔다. 밤에 자르는 것을 금했고, 자르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했으며, 함부로 버리지도 않았다. 머리카락과 손톱은 몸에서 떨어져 나간 또 다른 자아였다.


구약 신명기 21장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네가 만일 포로 중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반하여 아내로 삼으려거든, 네 집으로 데려가기 전에 그녀의 머리카락을 밀고 손톱을 잘라라.’ 이런 관습은 형벌로도 이어졌다. 죄인의 머리카락을 밀고 손톱을 뽑음으로써 교화가 완성된다고 믿었다. 군인은 머리카락과 손톱을 남겨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자 했고, 성직자는 머리카락과 손톱을 숨겨 신의 신성함을 보존했다.


인류가 언제부터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랐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손톱이 노동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분명하다. 너무 길거나 짧으면 손으로 하는 모든 작업에 부적합했으므로, 항상 적당한 크기로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사회체제가 어느 정도 형성된 뒤로는 계급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었다. 손톱을 자르는 다수와 달리 일부의 특권층은 손톱을 길렀다. 그건 손톱이 긴 사람은 노동으로부터 배제되었다는 뜻이었다.


지배계층은 머리카락을 다듬거나 손톱을 관리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그래서 신체에서 유일하게 쓸모가 없는 이 두 부분은 역설적으로 권력과 미의 상징이 되었다. 적지 않은 고대 이집트의 왕들이 머리카락과 손톱을 길렀다. 얼마나 길고 예쁜가가 권력의 척도였다. 밥 먹을 때, 옷 입을 때,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조차 누군가의 시중을 필요로 했다. 그들은 하루의 모든 시간을 손톱과 머리카락 손질에 허비했다. 왕과 왕비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관리하던 ‘매니큐러’라는 직책이 따로 있었던 것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몸치장에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왕의 몸에 유일하게 칼을 댈 수 있었던 매니큐러들은 조선시대의 내시들처럼 항상 권력구도의 중심에 서 있었다. 부패했던 그들이 한 일이라곤 손톱에 색을 입혀 신분을 구분 짓는 일이었다. 클레오파트라가 녹물이 들어간 붉은색 염료로 손톱을 물들인 건 유명한 일화다. 그녀의 사인을 두고 독사에 물려 자살했다는 설과 함께 염료에 의한 중금속 중독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당시만 해도 손톱을 입에 대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다. 호레이스가 쓴 ‘사탄’이라는 작품에 보면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행위를 초조함의 심리로 표현하는 부분이 나온다. 예술 속에서 눈물과 웃음 등의 1차적 감정표현을 벗어난 2차적 표현방식이 구현된 최초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때부터 손톱을 물어뜯는다는 표현이 관용구가 되었다.


서양뿐 아니라 동양에서도 손톱을 은밀하고 에로틱한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었다. 마고소양(麻姑搔痒)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바라던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쓰이는 이 한자는 진나라 갈홍이 편찬한 ‘신선전(神仙傳)’ 마고 편에 나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마고는 다른 선신들과 함께 어느 집에 묵게 되었다. 반갑게 마중 나온 집주인 채경이 선신들을 영접하면서 마고의 긴 손톱을 보고 야한 생각을 품는다. ‘저 손톱으로 가려운 등을 긁으면 얼마나 시원할까?’ 이 정도의 생각이 야한가는 따져볼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이 음흉한 생각은 곧바로 선신들에게 들통이 나고, 채경은 그날 밤 죽도록 곤장을 맞는다. 그는 땅바닥에 드러누워 눈물을 삼키며 다짐한다. ‘신이건 사람이건 다시는 긴 손톱을 집에 들이지 않으리라.’ 그 후로 사람들은 손톱이 긴 사람을 조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처럼 손톱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금기시하는 풍조가 지배적이었다. 인류가 보편적으로 손톱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건 비교적 근대에 들어서였다. 살로몬 코닝크(Salomon Koninck)의 ‘손톱을 깎는 연금술사’나 야코프 오흐테르벨트(Jacob Ochtervelt)의 ‘손톱 다듬는 숙녀’처럼 17세기 후반에 와서야 손톱이 그림의 소재로 쓰였다. 1880년대가 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손톱깎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전에는 눌러 절삭하는 방식이 아니라, 칼이나 가위와 같은 도구로 사과껍질을 벗기듯 자르거나 오렸다.(지금도 스와다에서 생산하는 손톱깎이는 니퍼식으로 생겼다.)


언제부턴지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내가 사용하는 손톱깎이는 어릴 때부터 집에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평생 한 손톱깎이만 사용한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쓰니까 총 사용 횟수가 많은 건 아니다. 다른 걸 써보지 않은 건 아닌데,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군대에 가져갔고, 여행을 함께 다녔고, 결혼한 뒤에도 가져왔다. 오래 보면 사랑하게 된다는 걸 이 손톱깎이를 통해 배웠다. 내가 이런 집착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손톱깎이에 새겨진 ‘Kai cut’이란 이름을 보고 일본산이란 걸 한참 뒤에 알았다. 일본에 갔을 때 편의점에 잔뜩 쌓인 걸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차디찬 쇠붙이에도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 같다.      


▶일본의 한 사이트를 발견했다. 별별 희한한 오타쿠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손톱깎이 오타쿠까지 있을 줄이야. 자신이 사용하는 손톱깎이의 사진을 올리고 사용 후기를 공유한다. 세상 사람 수만큼 요상한 손톱깎이가 많고 또 그만큼 이상한 사람도 많다. 본 중 최고는 손톱마다 깎는 손톱깎이가 다른 경우다. 왼손 엄지는 왼손 엄지용 손톱깎이로만 깎는다. 지정된 함에 보관하고 10개의 지정된 손톱깎이로만 깎는 편집증의 끝판왕이다. 심지어 깎은 손톱을 볶아 먹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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