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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Apr 27. 2019

침묵의 동의

여기, 사람이 있다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 버리면 되는데 그렇게 안 된다. 이쯤 되면 가지고 있으므로 고통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고통스럽기 위해 소유하는지 구분하기 힘들다. 인과관계는 인생처럼 복잡하다.


그날 아침은 공기부터 달랐다. 스모그인지 황사인지 모를 뿌연 대기가 하늘을 뒤덮어서, 날이 밝아도 해는 보이지 않았다. 차가 막혀서 여의도로 가는 출근길이 다른 날보다 오래 걸렸다. 지각을 했던 것 같다. 컴퓨터를 켜고 속보로 처음 접했다.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뉴스에서 마우스가 떠나지 못했다. 용산참사라고 불리는 그 사건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처음 남일당 건물에서 점거농성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그런 불상사가 벌어지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 경찰은 매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사실 경찰과 용산철거민 사이에는 ‘도시정비화사업’을 둘러싸고 1년 넘게 갈등 중이던 서울시가 있었다. 경찰의 개입은 서울시가 본격적으로 철거작업에 나서면서부터였다. 처음 경찰은 남일당 건물에서 날아오는 돌멩이와 새총으로 쏘는 유리구슬을 피하기 위해 최소한의 방어만 했다. 농성자들이 자진 해산하면 좋았겠지만, 한겨울에 길바닥으로 쫓겨나야 하는 철거민들로서도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래서 돌연 경찰이 강경한 자세로 태도를 바꾼 건 의아한 일이었다. 3개 중대 300명이 넘는 병력이 그 이른 아침에 투입되었다. 조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모두가 방심한 출근시간을 노린 것부터 이상했다. 크레인에 매단 컨테이너가 동원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작전이었으나, 화재에 대한 대비책은 없었다. 강제진압과정에서 망루에 불이 붙었고, 그로 인해 경찰 한 명을 포함해 아까운 목숨 여섯이 불구덩이에 사라졌다. 우리는 혼란에 빠졌다. 겨울인데 몸에서 쉰내가 났다. 쓰레기가 타는 냄새였다. 아무리 씻어도 가시지 않았다. 


사람이라는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사람을 빠르게 타이핑하다가 프롬프트에 ‘삶’으로 잘못 표기될 때가 많다. 사람은 산다는 뜻을 내포한다. 사전에서 ‘사람’의 어원을 찾아보면 ‘살아ᆞ감’으로, ‘살다(生)’의 어간에 명사형 접미사인 ‘아ᆞ감’을 덧붙인 것으로 나온다. 사람이라는 말 자체에 삶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사람이 될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지금처럼 살면 영영 사람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사람처럼 살아보지 못하고 죽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더는 사람 아닌 놈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알량한 거짓을 팔면서, 사람이 가면 안 되는 길로 걷기 싫었다. 판화가 이윤엽의 그림을 구입한 건 그래서였다. 500판 한정으로 찍었다는 것보다, 판매 전액이 철거민들에게 후원된다는 것보다, 그리고 작품의 예술적 가치보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말의 울림이 피를 돌게 하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들이 뻗은 손을 잡고 싶었다. 그들도 나도 모두 미완의 사람이다. 걸어서 가봐야 안다. 


그날로부터 10년이 지났다. 


하루도 곳곳에서 사람이 있다는 외침이 끊인 적이 없다. 어둠 속에서, 하늘 위에서, 바다에서, 열악한 작업 현장에서 손만 내밀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어떻게 살아야 사람이 되는지 아직 모르겠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만 달라지고 변한 건 없다. 확고했던 신념은 해변의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일쑤다. 물러서고, 돌아가고, 기다린다.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꼭 생계가 족쇄다.    

 

▶그날의 기록은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에 잘 정리되어 있다. 그 이후의 일은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에 알뜰하게 담겼다. 이윤엽의 판화는 액자에 넣어 책장 위에 걸렸다. 남일당이 있던 자리는 오랫동안 비어 있다가 최근에 공사가 한창이다. 한강로2가 224-1, 바뀐 도로명 주소로는 한강대로 84. 용산은 대한민국 부동산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도시정비를 가장한 재개발사업은 여전히 사람 탈을 쓴 자들의 재산증식 수단이고, 모두의 침묵을 동의 삼아 토건업자들이 배를 채우고 있다. 지구는 오늘도 지표면을 덮는 콘트리트로 숨을 쉬지 못한다. 우리는 나무를 심어야 할 자리에 빌딩을 세우는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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