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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Nov 13. 2019

한 여름의 맛

토하 비빔밥

탐진강에 댐이 들어서기 전이었다. 영암에서 월출산을 끼고 강진으로 넘어가는 길에 개산이라는 동네에서 길을 잃고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한 여자가 우리 차를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였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손을 든 여자는 허리가 구부정한 80대 노인이었다. 운전을 하던 후배는 급하게 차를 세우고 할머니를 태웠다. 


시내버스를 놓치고, 2시간 뒤에나 오는 버스를 기다리지 못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코 앞이라던 집이 갈수록 멀어졌다. 찻길로 다니는데 위험하지 않냐, 다음부턴 버스를 기다리셔라, 했더니 할머니는 종종 있는 일라는 듯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차는 할머니가 일러주는 대로 도로를 벗어나 신작로를 넘어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가서야 외딴집에 멈췄다. 기와가 군데군데 깨진 옛날 집이었다. 


내려드리고 가려는데 할머니가 붙잡았다. 고마워서 그냥은 못 보내겠으니, 밥이나 먹고 가라는 것이었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는데도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시방, 집이 추해서 그러는겨? 그게 아니구요. 죄송해서 그러지요. 그라믄 쪼께 들어와 보드라고. 찬은 없어도 먹던 밥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니께. 할머니는 기어이 우리를 마당에 붙잡아 두고 부엌으로 쪼르르 들어갔다.


마침 밥때가 가깝긴 했다. 후배와 나는 툇마루에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앉았다. 집도 나이를 먹어 할머니처럼 대들보가 굽어 있었다. 부엌문을 열 때마다 삐그덕 하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는데, 상차림이 길었다. 얼핏 부엌을 보니 그제야 솥에 밥을 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용기를 내 할머니에게 그냥 가보겠노라고 말했다. 할머니 낯이 굳어졌다. 남 성의 무시하는 거 아녀. 우리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무시라니요? 무슨 말씀을. 따순 밥 먹이려고 그라니께. 우리는 도망도 가지 못하고 굴뚝 위로 올라가는 흰 연기만 애처롭게 바라보며 기다렸다. 


따분한 시간이 가고 한참 뒤에 할머니가 우리를 불렀다. 후배가 부엌에서 상을 내왔다. 조촐했다. 양재기에 애호박나물과 부추, 오이가 들어간 비빔밥이었다. 옆에 건더기 하나 없는 맑은 된장국이 있었다. 밭일할 때 새참으로 이렇게 드신다고 했다. 그릇이 두 개뿐이어서 할머니는 안 드시냐고 하자, 깜밥 끓인께 걱정 말고 많이 먹으라고 했다. 들어간 것 없이 밥 양만 상당했다. 두 명이 한 그릇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후배와 나는 묵묵히 밥을 비볐다. 피할 수 없을 땐 대충 해라. 이런 명언이 있듯이 빨리 먹고 일어나는 게 장땡이었다. 


할머니가 잠시 부엌에 들어간 사이, 후배가 밥을 비비다 말고 난데없이 이게 뭐지? 했다. 가만 보니 가운데 있는 빨간색 양념이 고추장이 아니었다. 냄새가 좀 꿉꿉하니 이상했다. 젓가락으로 내용물을 해체하고 있는데 뒤에서 할머니가 작은 소리로 읊조렸다. 씨뱅이. 우리는 귀를 의심했다. 잘못들은 건가? 나는 후배의 얼굴을 보았다. 당황한 후배가 혀를 날름했다. 씨뱅이랑께.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예?


여기선 고추장을 씨뱅이라고 부르는구나 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아주 작은 새우였다. 눈알과 수염이 고춧가루 양념 속에서 다부지게 헤엄치고 있었다. 맛이 기가 막혔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신비로운 맛이었다. 와, 후배와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할머니가 더 먹겠냐고 해서 한 그릇씩 더 먹고, 마지막에 누룽지까지 얻어먹었다. 반찬이 필요 없었다. 씨뱅이 한 종지면 되었다. 우리가 씨뱅이에 열광하자, 할머니가 한 주먹을 비닐에 담아주셨다. 마다하지 않았다.


혼자 사시냐 하니, 첫째 아들은 서울 살고, 둘째 아들은 미국에 살고, 광주에 사는 딸이 한 달에 두어 번 온다고 했다. 큰 손자가 우리보다 나이가 많았다. 어릴 때 본 뒤로 전화 통화만 했다. 한국말이 어눌해서 길게 통화 못 한다고 했다. 고향 떠나서 살고 싶지 않다. 죽으면 영감탱이 옆에 묻히겠지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입 안에 씨뱅이 향이 계속 맴돌았다. 그날부터 그다음 날까지 후배와 나는 식당마다 씨뱅이를 들고 들어가 밥에 씨뱅이를 비벼먹었다. 


탐진강에 다녀온 뒤에 후배가 전화했다. 목소리가 들떠있었다. “형, 그게 뭔지 알았어. 그거 토하야. 토하.” 토하? “토하젓 있잖아. 태백산맥에 나오는 거.” 이름만 들어봤지. 본 적은 없었다. 아, 토하구나. 왜 토하지? “민물새우잖아. 그거 땅에서 자라거든.” 아, 흙 토. 입에서 침이 흘렀다. 아, 씨뱅이 먹고 싶다. “나도.” 또 가자. “거길? 그래도 될까?” 뭐 어때? 할머니 심심하실 텐데. “우리가 손자도 아니고.” 손자는 말도 잘 안 통하는데 뭘? “그래도.”


가지 못했다. 서울에선 너무 먼 길이었다. 후배와 나는 서울에서 토하젓을 알아보았다. 파는 곳이 드물었다. 막상 찾아가면 가격만 비싸고 그 맛이 아니었다. 새우 종류가 다른 게 분명했다. 우리가 먹던 것보다 눈알이 컸다. 그 동네에 댐이 들어섰다. 할머니 집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모든 게 꿈이었다. 잠깐 눈부친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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