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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Nov 13. 2019

발효의 결정체

간장

1년에 한 번씩 장 담그는 시기가 되면 엄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절에서 얻어온 큰 달력을 앞에 놓고 수흔일(水痕日)과 육신일(六申日)을 피해 날짜를 골랐다. 수흔일은 물자국이 남는 날로 대기 중에 수분이 많은 날을 말하고, 육신일은 여섯 개의 신일, 즉 12 간지 중 원숭이가 들어간 날을 가리킨다. 음력과 양력을 구분하지 못했던 나는 달의 크기와 위치, 그리고 원숭이가 장 담그는 일에 무슨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엄마한테 묻지 못했다. 나중서 커서 물었더니 관습이라고 했다. 그냥 웃어른들이 그렇게 하니까 따라 했던 거라고.


오일(午日, 말이 들어간 날), 또는 그믐, 손 없는 날을 골라 날짜가 정해지면 엄마는 목욕탕에 다녀왔다. 그날부터 부정 탈까 조심하면서 사흘간 외출을 하지 않았다. 나한테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입에 마스크를 쓰고 장독에 금줄과 고추를 둘렀다. 대문과 장독대, 화장실에 소금을 뿌리고, 한 그릇씩 올려서 악귀를 쫓았다. 역시 엄마가 너무 진지했으므로 나는 왜 그러냐 묻지 못했다.


가을에 쑤어둔 메주를 꺼내 소금물로 씻고, 짚을 태워 소독한 항아리에, 끓여서 식힌 소금물을 부었다. 소금물의 농도는 달걀을 띄워 조절했다. 마지막에 고추와 숯을 넣어 장식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장을 담그고 나면 한 달 동안 옥상엔 출입금지였다. 엄마만, 그것도 얼굴을 칭칭 가리고서 올라갈 수 있었다. 음기가 장의 신성한 화학적 반응에 영향을 끼칠까 두려웠던 것이다. 엄마는 아침마다 사발에 물을 떠서 장독대 앞에 놓고 정성껏 기도를 드렸다. 아침에 뚜껑을 열고, 해가 지기 전에 덮었다. 비가 오면 십리 밖에서 날아왔고, 우중충한 날은 아예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왜 그러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가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


한 달이 지나, 맑았던 소금물이 시커멓게 변했다. 엄마가 자연이 얼마나 신비롭냐기에 숯에서 나온  색깔이 아니냐 나름 근거를 가지고 주장했다가 줘 터지는 줄 알았다. 엄마는 마당에 장작을 쌓고 소금물을 끓였다. 그 냄새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갔다. 온 동네 개들이 끙끙댔다. 왜 ‘간장 달이는 냄새’라는 표현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엄마는 간장이 식는 동안 남은 불에 감자를 구웠다. 손과 입에 숯검댕이를 묻히고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뜨거운 감자를 오두방정을 떨면서 먹었다. 일 년에 한 번 오는 김장철처럼 어린 나에겐 축제 같은 날이었다. 마당 있는 주택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다시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일본에 갔을 때 감명받았던 건 일본인들의 간장에 대한 집요한 집착이었다. 조선간장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간장과 다르게 다마리 간장, 시로 간장, 고이쿠치 간장, 아마자케 간장 등 종류가 많았다. 흰색이 나는 것부터 술을 넣는 간장까지 다양했다. 일본간장은 콩에 밀을 섞는다. 밀의 당분과 아미노산이 콩에서 생기는 효모와 젖산을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원래 전통 일본식 간장은 대나무 발에 짚으로 만든 거적을 깔고 그 위에 콩을 발효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얻은 전국을 삼나무 통에 넣고 다시 3년 이상 숙성했다. 지난하고 힘들었던 공정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공장식 시스템으로 전환되어 시간과 수고를 단축시켰다.


재밌는 것은 볏짚의 역할이다. 발효과정에서 볏짚의 미생물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 좋은 간장 맛은 좋은 볏짚에 달려있다. 또 좋은 토양과 기후가 좋은 볏짚을 만든다. 쌀농사 잘 되는 곳이 장맛도 좋았다. 어릴 때, 할머니가 단무지 담그는 걸 지켜보았는데, 거기에도 짚이 들어갔다. 무를 가득 담은 항아리에 치자와 고추, 그리고 마지막에 짚을 넣고 소금물을 부었다. 그렇게 몇 개월 지나면 노랗게 익은 맛 좋은 짠지가 밥상에 올라왔다. 볏짚은 알게 모르게 우리 음식에 영향을 끼쳤다. 홍어를 삭이는 것도 짚이다. 흑산도에서 잡은 싱싱한 홍어를 내륙으로 옮기면서 볏짚으로 덮었던 것이 삭힌 홍어의 출발이었다. 메주를 처마에 매달 때에도 짚을 사용 했고, 청국장의 맛을 좌우하는 것도 짚이었다. 이태 전, 볏짚을 구하려고 알아보다가 포기했다. 한창 유행하던 삼겹살 볏짚구이 열풍이 지난 뒤여서 농약을 쓰지 않은 볏짚이 드물었고, 있다고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사실 간장은 중국의 어장이 기원이다. 중국 황실에서 생선을 소금에 절여 발효한 액체를 조미료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현재 일부 남쪽 지방에 전해지는 어간장과 비슷했다. 그러나 생선을 구하기 쉽지 않은 지역에서는 콩에서 단백질을 추출해 어장과 비슷한 액체를 만들어 먹었다. 그걸 콩이 원료라고 해서 두장이라고 불렀다, 초기에는 간장과 된장 사이의 어정쩡한 죽 같은 형체였다. 삼국시대에 와서야 겨우 된장과 간장으로 분리됐다. 그때만 해도 워낙 귀한 식재료라 결혼식 폐백음식으로 오를 정도였다. 시어머니 무서운 시집엔 살아도 장맛 없는 시집엔 살 수 없다는 속담이 나왔다.


중국에서 시작된 어장은 아시아 전체로 퍼졌다. 베트남 느억맘처럼 생선을 원료로 하는 것과 한국처럼 콩을 원료로 하는 두 가지 형태가 전해졌다. 일부 동남아시아에선 야자열매를 넣기도 하고, 생선 대신 굴을 발효(굴소스)시키기도 한다. 콩을 사용하는 경우엔 두반장 류의 걸쭉한 소스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한국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간 간장과 된장은 전체 아시아에서 보면 매우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국가에서 간장은 발효식품이 아니다. 단백질을 뽑기 위해 가수분해물과 염산을 사용하고 옥수수 시럽과 캐러멜을 첨가한다. 외국에선 어장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담그는 법

1. 날짜는 아무 때나. 메주는 좋은 콩으로 빚은 걸 산다.

2. 항아리에 소금물을 붓고 메주를 띄워 한 달 보름간 기다린다.

3. 집에서 간장을 달인다면 조심할 것.

4. 가스누출 의심 신고로 아파트 단지에 대피명령이 떨어질 수 있다.

5. 119 구급대원이 소화전에서 뽑아온 호수를 끌고 들어와 당신에게 발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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