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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May 26. 2018

분리불안은 아이들에게만 있지 않다

호텔을 나와 세 블록도 지나지 않은 길에서 노상방뇨 중인 남자를 만났다. 그는 우리 가족과 눈이 마주쳤으나 무심하게 제 볼일에 집중했다. 낯선 외국인이 자신을 본다는 것에 전혀 괘념치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볼일을 해결하던 장소가 외진 구석이거나 골목길도 아니었다. 사방에서 오토바이와 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가는 넓은 교차로였다. 그 길 위에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와중에 그는 변전시설이 있는 벽을 향해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았다. 알렉산더에게 ‘햇빛을 가리지 마’라고 일갈한 디오게네스의 풍모였다. 급한 일을 마치고 몸을 부르르는 떠는 그의 어깨 위로 짧은 희열이 날아갔다. 아이들과 아내는 멋쩍게 웃었다.


그런 목격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두어 번 더 있었다. 건기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지린내가 많이 없었다. 노상방뇨가 거의 사라졌다는 방증이었다. 예전에 정말 심했다. 하루에 수십 번씩 마주치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풍경처럼 익숙해져 호치민시 전체가 거대한 화장실이 아닌지 착각할 정도였다. 우스개로 높은 건물에서 경비원을 채용하는 이유가 각종 위험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노상방뇨를 하기 위해 건물에 달라붙는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만큼 노상방뇨는 베트남의 보편문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자신이 몰고 다니는 자동차의 타이어에 볼일을 보는 사람들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자신의 차에 소변을 보았다. 그래도 예의는 있어서 남의 차에 실례할 만큼 파렴치한들은 아니었다. 차를 모는 남자들 대다수가 그랬다. 택시운전사나 개인운전자나 트럭운전사나 차종을 가리지 않았다. 적어도 13년 전엔 흔한 일이었다. 

2003년 베트남에 흔했던 클래식한 차들


그들의 입장에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도 있다. 스콜이 한 바탕 지나가면 세차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치민의 배수시설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 때다. 거리에 오줌 지린내가 진동한다. 엄살을 보태서 술 한 잔 마시지 않고도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냄새에 취해 비틀거리는 취객이 상당했다.


회사에 있을 때, 이런 노상방뇨에 대해 베트남 직원들에게 물어보았다. 모두 나처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시골에서 도시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벌이는 행각이라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농사만 짓던 사람들에게 공중 문화란 게 있을 리 없잖아. 논밭에 볼일 보는 습관이 남아있는 거지.”

“그래도 타이어에 실례를 하는 건 정말 이상하지 않아?”

그러자, 한 베트남 직원이 대답했다.

“미스터 문이 몰라서 그래. 차가 얼마나 소중한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베트남에서 차는 우리나라에서의 차와 많이 다르다. 환율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월등히 비쌀 뿐만 아니라, 돈이 있다고 개인이 함부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를 보관하기 위해서는 집을 사야 한다는 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가령 차 한 대를 사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금액을 지불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불어 그 액수에 맞먹는 세금을 내야 한다. 백만 원짜리 차를 사려면 세금도 백만 원을 내야 한다는 얘기다. 초기 구입비용만 비싼 게 아니다. 운용비 또한 만만치 않다. 운전사를 따로 고용하지 않더라도 차주가 자리를 비운 사이 차를 지키는 사람을 반드시 두어야 한다. 안 그러면 한 눈 파는 사이 타이어가 사라지는 사태를 감수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운용이 쉽고 저렴한 오토바이에 베트남 사람들이 집중하는 까닭이다.


그런 소중한 차에 왜 오줌을 갈기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직원은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쉬 싸러 간 사이 도둑이 차를 가져갈 거면 어쩔 건데?”

아, 깊은 한숨과 함께 나는 감탄했다. 그리고 그들의 차에 대한 애정과 숭고한 정신을 얕잡아 본 것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차마 차 곁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2018년 베트남에서 볼 수 있는 슈퍼카들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이들과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방광에 신호가 오면, 현재의 위치에서 백사장까지의 거리와 그리고 백사장에서 화장실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고, 또 그 시간만큼 아이들을 바다에 남겨둬야 하는지, 아니면 데리고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결론은 매번 뭍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바다로 더 깊이 들어가는 쪽으로 났지만, 그렇다고 내가 시골에서 도심으로 갓 상경한, 못 배운 놈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에 깊이 천착한 나머지, 혹시라도 아이들이 먹을지도 모를 바닷물에 그만 실례를 한 것이다. 


나는 자신의 차에 소변을 보는 그들의 심리가 바닷물의 농도와 빗물의 희석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바다에 아이를 두고 떠나지 못하는 나와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돌이켜보건대 나 역시 차에서 잠을 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십 대에 처음 차를 사서 주차를 시켜놓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밤사이 오가기를 수십 번, 끝내 차에서 잠을 청했을 때의 그 불안한 심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 사진 한 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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