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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우연 Jun 02. 2018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

기억력은 한계가 있다. 그에 비해 몸의 기억은 오래간다. 자전거나 수영처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힌 것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특히 혀의 기억은 강력하다. 어릴 적 우연히 먹은 음식이 평생의 입맛을 좌우하기도 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내와 나는 베트남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이번 베트남 여행의 목적이 ‘기억의 맛을 찾아가는 기행’이라고 단언했다. 한국에서 먹는 베트남 음식은 베트남 음식이 아니다. 쌀국수의 육수는 양지와 사태, 닭으로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공스프를 사용하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사골처럼 뼈를 우리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쪽파가 아닌 대파를 넣기도 하고, 숙주를 익혀서 내는 곳도 있다. 달랑 고수 하나 올린 쌀국수는 평양냉면에서 꿩이 빠진 것처럼 공허하다. 


오래전,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본국에서 중요한 손님이 방문했다. 마침 대사관에 다른 일정이 있어 이탈리아인들이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한국직원은 서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손님을 모시고 가 스파게티를 비롯한 이탈리아 음식을 정성껏 대접했다. 맛있게 먹은 손님은 레스토랑을 나오면서 겸연쩍은 듯 귓속말로 한국직원에게 물었다. 

“나중에 여자 친구와 또 오고 싶은데, 이 요리 이름이 뭔가요?” 

난처해진 한국직원은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장소가 바뀌면 요리는 달라진다는 명제는 영원하다.    

 


염소고기(Thịt dê)

목록 중 가장 먼저 꼽힌 것이 바로 염소고기였다. 이견이 없었다. 다른 것들은 아쉬운 대로 흉내 낸 음식들이 한국에 있었지만 염소구이는 아니었다. 안산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렵게 찾아갔으나 전혀 달랐다.


호치민 3군 지역에 우리가 자주 가던 단골집이 있었다. 사라졌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다른 곳으로 이전했으면 큰 낭패였다. 하노이와 다낭, 호이안에서도 염소 고깃집을 갔었고, 호치민에 있는 다른 염소 고깃집에도 가보았으나, 그 집 만한 식당을 찾지 못했다. 도착한 날 저녁 우리는 지체 없이 그 단골집을 찾아갔다. 13년을 기다린 만큼 간절했다. 


다행히 그대로 있었다. 마치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흔한 리모델링조차 하지 않은 채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특유의 두부소스와 고깃기름 냄새가 났다. 코를 벌름거리면서 단숨에 2층에 올라가 우리가 주로 앉던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일하는 사람 사이에 눈 익은 얼굴이 두어 명 보였다. 그들이 나를 기억할 리 만무했지만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호치민의 거리 풍경을 감안할 때, 13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 집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음식을 준비하는 1층 주방은 물론이고, 낮은 함석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조차 바뀐 것이 없었다. 화장실마저 여전히 더러웠다. 화장실 앞에 손 닦는 세면대가 놓인 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각종 채소가 쌓인 바구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손을 닦던 시간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종업원이 가져온 메뉴판에 익숙한 글자가 보였다. ‘dê’가 염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양념구이와 탕을 시키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라이스페이퍼와 짜다(얼음이 들어간 연화차)가 먼저 나오고, 반가운 냄새의 각종 허브 종이 수북이 탁자에 쌓였다. 안타까운 것은 숯불이 아닌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테이블에 올라온 것이었다. 불판도 석쇠가 아닌 우리나라 삼겹살집에서 흔히 쓰이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구이판이었다. 불맛이 사라진 양념구이는 아쉬웠다. 

고기부위와 젖살부위를 따로 판다

그러나 막상 고기를 익혀 입에 넣는 순간 모든 것을 용납할 수 있었다. 머리와 눈은 몰라도 혀는 알았다. 기름기 없이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지난 시간을 되살렸다. 고기 특유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두부소스의 달콤함에 배어 베트남 깻잎 특유의 향과 흥 꿰(húng quế), 라우람, 무이 따이(Rau Mùi Tây)와 어우러졌다. 


절묘한 것은 라이스페이퍼다. 상추처럼 쌈으로 사용되는 라이스페이퍼는 옅은 맛을 살리는 동시에 강한 맛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늦은 점심을 먹어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도 두 개의 큰 접시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이어서 나온 탕 역시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뭉근히 끓이는 숯불은 아니었지만 남방개와 버섯, 토란과 연근, 대추와 염소껍질이 냄비 안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염소탕은 고기를 건져먹은 후에 면사리와 국수사리를 넣고 다시 끓여야 제 맛이다. 끓일수록 고기 향이 우러나와 더욱 깊은 맛이 된다. 육수는 달라는 대로 얼마든지 가져다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염소를 보양식으로 여기는 분위기지만, 사실 염소는 세계에서 양 다음으로 많이 소비되는 식용가축이다. 소보다도 많다. 원재료인 염소를 실물 사이즈로 보면 우리나라 농촌에서 흔히 보이는 종이 아니다. 덩치가 크고 털이 길어서 산양과 흡사하다. 고산지대에서 풀어놓고 사육한다. 가파른 절벽 사이를 뛰어놀던 놈들이라 기름기가 적다.


염소고기의 참 맛은 두부 양념장에 달려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두부소스를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구워 먹기도 한다. 고기 자체의 맛을 즐긴다면 상관없다. 또 커리를 베이스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베트남식이라기보다 인도와 자메이카의 요리가 변형된 결과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이와 아내 모두 얼굴에 기름기가 흘렀다. 이제 소원풀이 하나 끝낸 셈이었다. 13년 간 한 자리를 지킨 식당이 고마웠다. 첨언하자면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날 밤 한 번 더 그 집을 방문했다. 식당을 나오는 발이 무거웠다. 얼마나 더 그 자리에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반 세오(bánh xèo)

베트남어 선생이었던 Linh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우리를 처음 데려간 식당이 하이바쭝 거리에 있는 ‘반 세오’ 집이었다. 처음엔 그저 그랬다. 빈대떡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른 맛있는 음식을 제쳐두고 반 세오를 최고로 치는 그녀가 이상했다. 


“참, 소박한 아이야.”

“아직 학생이라서 그래. 크면 달라질 거야.”

우리 부부는 그녀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뒤, 우리가 소박한 어른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반 세오를 먹었다. 쌀국수는 안 먹어도 견딜 수 있었지만, 반 세오는 거를 수 없었다. 반 세오 없는 베트남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반 세오에 들어가는 재료는 지역과 가게마다 다 다르다. 어디는 파파야를 넣기도 하고, 어디는 조갯살을 넣기도 하며, 또 어디는 우리나라의 파전처럼 쪽파를 넣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꼭 빠지지 않는 건 찹쌀가루에 새우와 돼지비계, 계란, 숙주다. 분량의 차이는 있지만 이 재료가 모두 들어가지 않으면 반 세오가 아니다. 

정석은 이렇다. 불은 숯불이면 좋다. 지금은 가스불로 모두 교체되었다. 매캐한 숯불 연기 틈에서 먹는 정취가 사라져서 안타까웠다. 먼저 넓은 팬에 돼지기름(이것도 식용유로 대치되었다)을 두르고 찹쌀가루 푼 것을 빠르게 부친다. 여기에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불린 녹두'를 넣는 것이다. 녹두가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의 차이는 먹어보면 안다. 이때 팬에서 ‘치지직’하는 소리가 난다. ‘세오’는 베트남 말로 프라이팬에 기름 튀기는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다. 어째서 그런 소리가 난다고 느끼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세오 세오’ 하면서 익는 반 세오에 침을 삼키게 된다. 


그 위에 숙주와 돼지비계, 머리를 떼어낸 새우를 올리고, 풀지 않은 계란을 덮는다. 적당히 익으면 반으로 접어서 접시에 낸다. 젓가락으로 뚝뚝 끊어서 배추와 상추에 깻잎, 라우람, 카프라오 등을 싸서 함께 먹는다. 꼭 파파야와 당근을 넣은 느억맘에 푹 찍어서 소스가 반세오의 찹쌀 부분에 스며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바삭하면서 부드럽고, 촉촉하면서 질기고, 느끼하면서 개운하다. 거짓말 같지만 이 모든 맛이 실제로 입안에서 일어난다. 이런 풍미는 베트남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흉내 낼 수가 없다. 느억맘은 구할 수 있으나 파파야가 힘들고, 파파야를 구한다고 해도 함께 싸 먹어야 할 허브를 구하지 못한다. 박하와 고수만으로 판단이나 쿨란트로, 골파의 맛을 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미(bánh mì)

bánh은 빵이나 떡을 말하고, mì는 밀을 말한다. 풀어서 말하면 밀로 만든 빵이다. 바게트에 각종 채소와 고기, 햄, 치즈 등을 넣은 샌드위치를 일컫는다. 


반미는 간편하게 허기를 채울 수 있는 페스트 음식이다. 미리 만들어 놓은 재료를 손님이 고르면 빵을 길게 갈라서 넣어서 준다. 긴 빵과 짧은 빵,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가격이 제각각이다. 싼 건 불과 500원도 하지 않지만 비싼 재료로 속을 가득 채우면 3,000원을 호가한다. 

당연히 반미를 잘하는 집은 직접 바게트를 굽는 집이다. 다음으로 잘하는 집은 직접 굽는 집에서 납품을 받아온 집이고, 그다음으로 잘하는 집은 손님이 주문을 하면 그 자리에서 빵을 데워주는 집이다. 그래야 바삭한 식감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그런 집이 아니면 굳이 먹을 이유가 없다. 반미는 떡볶이처럼 어디나 널려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반미가 맛있는 건 어디까지나 질 좋은 밀가루 덕이다. 한 번 입맛이 들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현지에 살 때 밀가루 음식을 자주 해 먹은 이유였다. 부침개, 칼국수, 수제비, 해물전. 밤마다 꾸준히 야식거리가 늘어났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가 들어온 걸로 보고 과연 경쟁이 될까 의심이 들었다. KFC나 롯데리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KFC의 세트 메뉴, 삶은 계란과 식빵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다국적 기업의 프랜차이즈와 외식업체가 셀 수 없이 등장했다. 그 틈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고군분투했다. 제법 현지화에 성공한 듯싶었다. 레시피, 맛, 가격 모두 적당했다.

파리바게트에서 파는 빵

다른 얘기를 꺼내자면 호치민 번화가의 식당을 돌다가 한 베이커리 앞에서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싱가포르인이 운영하는 가게 앞에 셰프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사진을 보는데 괜히 가슴이 먹먹하고 목이 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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