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를 읽는다_박완서

by 여울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시를 읽는다_박완서>


與鬱의 生生知音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어서,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헐거워질 때

우리는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조차

쉽게 꺼내지 못합니다.


그럴 때

책을 펼치고

시 한 편에 마음을 기댑니다.

등은 따뜻하고 배는 부른데

마음은 이상하게 둔해질 때가 있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아무 느낌도 없는 상태.

그럴 때 이 시는 말합니다.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고.

시는

우리를 달래기만 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편안함에 잠든 감각을 찌르고,

무디어진 마음을 깨웁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을

다시 불러옵니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음을 떠올리면 무서워질 때,

시를 읽는다는 것은

약함의 고백이 아니라

정직함의 고백입니다.


괜찮은 척하지 않고

두려움을 인정하는 태도.

가장 마음에 오래 남는 대목은

이 문장입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우리는 늘

이 모순 속에 서 있습니다.

이제는 충분히 살아온 것 같다고 말하다가도

내년을 준비하느라

여전히 허둥댑니다.


그 모습이

스스로 보아도

애틋하게 느껴져서,

그래서 시를 읽습니다.


시는

삶의 답을 주지는 않지만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우리의 모순과 흔들림을

그대로 받아줍니다.


혹시 마음이 심심하다면,

혹은 너무 편안해서

삶의 감각이 흐릿해졌다면

시 한 편으로

스스로를

살짝 찔러보아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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