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졸린저녁 Jun 17. 2017

피해망상

네 아빠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


"오늘 아침엔 아빠가 약을 덜 뿌린 것 같아"

태연한 얼굴로 말하는 엄마 얼굴을 보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래, 다행이네"

간신히 대답을 하며 이 대답이 엄마가 원하는 대답인지 혹여 다른 의중이 있는 것인지 눈치를 살피느라 머릿속이 복잡하게 헝클어졌다.





우리 엄마는 지금 마음이 아프다. 흔히 피해망상이라고 일컷는 증상.

엄마가 이 증상을 앓기 전까진, 누군가 지나가는 애꿎은 사람에게 해를 끼쳤다거나 오랫동안 증상에 시달리다 가족을 죽였다거나 하는 뉴스에서나 들어봤던, 말 그대로 나한테는 멀리 있다 생각했던 단어였다. 


증상의 시작은 약 4년 전부터였다. 엄마가 이 증상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된 건 불과 일주일 밖에 안됐는데, 왜 이런 증상을 겪기 시작했는지 기억을 더듬다 보니 엄마의 이 병은 4년 전부터 시작되어 천천히 악화되고 있었단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4년 전 어느 날, 부모의 다툼이 눈에 띄게 잦아졌던 때가 있었다. 

아빠의 방임과 엄마의 정서적 학대 속에 자라난 나는 두 사람의 다툼을 남에 일인양 대하려 애썼는데, 기억도 나지않을 만큼 어린시절부터 반복되어 왔던 다툼이기도 했고 가족 밖으로 한발자국이라도 벗어나야 내가 살 수 있단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새벽녘에 느닷없이 시작되는 두 사람의 다툼에 짜증이 치솟았을 뿐, 정상 출근과 자정무렵 퇴근을 반복하던 내게 새벽에 이루어지는 두 사람의 다툼은 그간의 두 사람만큼이나 이기적이고 배려없는 행동이라 여겨졌다. 


다툼은 언제나 고성과 욕설로 이어졌고, 한 집에 있는 자식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서로에게 쏟아지는 욕설을 듣다 못해 방문을 박차고 나간 내가 그만하라 고함을 질러대야 억지로 멈추곤 했다.

나는 그렇게 두 사람에게 고함을 질러 싸움을 끝내는 것 외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어쩌다 둘의 사이가 이지경이 됐는지는 내 관심 밖이었기에.

그러나 그 일을 남 일인양 여기며 지내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당장 이모들부터 엄마에게 잘하라느니 등의 참견 문자를 받기 시작했고 끝내 큰이모로 부터 몇시까지 어디로 나오라는 호출이 떨어졌다. 

동생도 문제였다. 몇 년째 공부를 붙잡고 있느라 종일 부모와 한 집에 갇혀있던 아이였다. 자발적으로 갇혀있기 시작했으나 불행한 가정사에 발목잡힌 동생은 부모의 사이에서 고립되어 탈출구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제는 엄마를 죽이고 싶단 생각을 했어"

소주를 주고받다 들은 동생의 말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더불어 더이상 나혼자 살겠다고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그 당시 두 사람의 사정은 이랬다. 

몇 년간 동네 헬스장을 꾸준히 다니던 아빠가 헬스장에서 몇몇 아줌마들과 친해졌던 모양이었다. 원래 배려도 없고 눈치도 없던 아빠는 엄마에게 자신이 다니는 헬스장에 자신을 좋아한다 따르는 아줌마가 있다며 자랑을 했고 때론 연애나 해볼까 한다는 말로 엄마의 복장을 뒤집곤 했던 것 같다. 이미 젊은 시절 아빠의 외도로 트라우마가 있던 엄마는 이때부터 망상의 씨앗을 심고 착실히 땅을 다져나갔다. 그리고 아빠가 그 아줌마들과 엄마가 아는 술자리 몇 번과 엄마가 모르는 술자리 몇 번을 거친 끝에 엄마의 불신이 폭발하였다. 


동생이 엄마에게 치를 떨게 됨으로 인해서 내가 사정을 알게되었던 무렵은 여러 번의 의심과 부부싸움 끝에 엄마가 그 아줌마가 꽃뱀이며 재산을 훔쳐가려고 아빠에게 접근했다는 결론을 내린 후였다. 


서울의 중하층, 얼마되지 않는 재산이지만 엄마에겐 평생을 일군 재산이었다. 평생 일군 재산을 멍청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아빠로 인해 뺐길 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엄마가 주위에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탐문수사 아닌 탐문수사를 벌이게 만들었고, 남자의 바람이라는 가십성 이야기에 재미를 느낀 몇몇의 지인들이 '원래 남자들의 90%는 바람을 핀다는 둥', '바람이 나도 조강지처는 버리지 않는데 아빠처럼 순진한 남자들은 끝까지 간다는 둥' 책임감없는 입방아를 찧어대며 엄마의 망상이 부푸는데 일조했던 듯 하다. 더불어 정서적 불안이 유전인 외갓댁의 피를 이어받아 차례로 우울증을 앓았던 이모들이 엄마의 망상을 더욱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초장에 잡아야 한다 혹은 집에 명의를 가져와야 한다 등등등.


이미 엄마는 큰이모와 함께 아빠의 주민등록증을 훔쳐다가 집 명의를 바꾸려는 시도를 했다고 했다. 엄마의 의심에 괴로웠던 아빠가 엄마의 거듭되는 명의변경 요구에 들어주마 하고 항복선언을 했다 마음을 바꿔 크게 싸운 후의 일이었다. 


큰이모의 개입으로 부모의 사이가 더 벌어지는 것도 원치않았고 요령이 없어 괴로워만 하고 있는 동생의 답답함도 보기 싫었던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엄마 모르게 대출을 몇 천받아 그 여자에게 가져다 주었다는 엄마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 아빠와 함께 은행을 방문하여 대출없음을 확인하고 아빠가 거래를 튼 은행과 카드사 앱을 다운로드 받고 금융감독원까지 들어가 모든 거래내역을 조사했다. 택시운전을 하는 아빠가 떼온 몇달간의 주행기록을 일일이 엄마 눈앞에서 확인하고 휴대폰 통화내역까지 함께 들여다봤다. 


기록은 깨끗했고 증거는 없었다. 아빠는 그냥 날 때부터 배려없는 사람이었고 엄마의 의심은 합리적이지 않은 생각인 것으로 결론내려 엄마를 들쑤셔놓은 큰이모까지 불러놓은 자리에서 자료를 들먹이며 열과 성의를 다해 엄마를 설득했다. 분노와 화가 가득한 설득이었다. 더불어 이혼을 하려거든 당장 하라는 소리까지 덧붙이며 엄마의 입을 조개처럼 다물게 만들어 놓은 그런 최악의 설득...


그렇게 한동안은 집에 평화가 찾아왔다. 물론 그 와중에도 크고 작은 부침이 있었으나 아빠의 욱하는 성격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불같은 성미를 지닌 딸 눈치에 겉으로는 조용한 시간이 이어졌다. 





일주일전, 나는 엄마가 조용하게 지냈던 4년의 시간동안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상을 키워온 것을 알게되었다. 따로 살고 있는 나는 몰랐지만 함께 살고있는 아빠와 동생은 엄마에게 초기치매 증상이 온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줄곧 하고 있었노라 말했다. 


엄마의 증상이 심상치 않음을 뒤늦게 눈치 챈 동생이 일주일전 엄마와 함께 병원을 방문하여 알게된 병명은 망상장애. 그간 엄마는 우울증과 신경쇠약이라며 병원을 꾸준히 다녀왔었고 엄마 말대로 갱년기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이라 믿었던 가족들이 병원을 함께 가지 않았던 터에 증상을 늦게 알게된 것일뿐. 병원에서는 진작부터 망상장애로 진단하고 치료를 해오던 상황이라 들었다. 단지, 망상장애라는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본인의 병식을 부인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해 병원에 발길을 끓는 경우가 많아 본인에게도 밝히지 않았을 뿐. 


동생에게 엄마의 병명을 전해듣고 오랜만에 엄마와 마주보고 앉았다. 너희들은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며 몇차례 주저하던 엄마는 눈물을 흩뿌리며 지난 4년간 아빠가 헬스장의 그 아줌마를 꾸준하게 만나고 있었고, 이제는 그 아줌마와 함께 살기 위해 엄마가 있는 곳마다 엄마만 맡을 수있는 약을 뿌려 엄마를 천천히 죽이려 하고 있다고 했다. 불안한 눈동자와 떨리는 목소리로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스토리를 말하는 엄마를 보며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지금 이 말을 하는 사이에도 집 안에 있는 몰래카메라와 위치추적기로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고 했다. '누가 엄마를 감시하는데?' '네 아빠가'. 





피해망상을 앓고 있다고 해서 엄마가 일상도 영위하지 못할 정도로 미친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밖에서의 엄마는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는 여린 친구이고 언제나 부지런하게 일해주어 고마운 직장 동료로써의 역할을 놓치지 않으며 잘 지내고 있다. 단지, 엄마에게 주적으로 설정된 아빠와 함께 지내는 공간 즉 집 안이 엄마에게 안전한 곳이 아닌 위험한 곳이 되어버려 엄마가 정상적으로 지내기 어렵게 만들고 있을 뿐. 덕분에 엄마는 집에서는 맘 편하게 씻지도 잠들지도 못하고 살기 위해 일찍 집 밖으로 나가 되도록 늦게 집 안으로 들어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야할까? 


엄마와 하루 걸러 하루 꼴로 통화하는 이모들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엄마의 증상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다 낌새를 채더라도 갱년기로 인한 신경쇠약이 좀 있다라고 대답하면 그렇구나 할 정도로 '정상적'이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는 여지없이 증상이 도드라진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모든 행동을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몸까지 아프게 하여 자리에 드러눕기 일쑤이다.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야할까?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혹은 어떤 것을 하지 않아야 엄마에게 도움이 될까?


엄마를 제외한 가족들끼리 머리를 맞대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다음주에는 엄마 몰래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려는 약속도 잡아놓았다. 나는 지금 엄마 머릿속에 있는 지옥같은 세상이 불쌍하고 엄마와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아빠와 동생이 불쌍해서 심장이 따갑고 아프다. 우리 가족을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








 

매거진의 이전글 아픈 마음 보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