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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저녁 Jun 29. 2017

하고싶은 일을 다하며 살 수는 없어

억울함은 마음의 질병을 낳고


네가 하고싶은 일을 다하며 살 수는 없어.


 성장과정에서 엄마에게 가장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고를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돈이나 부모의 수고가 필요할 때면 언제나 듣곤 했던 말. 학교에서 보호자 동행이 가능한 소풍이나 체험학습을 가는데 엄마가 같이 가 주길 바랐을 때, 나와 어울려 노는 친구들 대부분이 다니던 미술학원에 나도 가고 싶어 했을 때, 드레스코드가 한복인 예절수업을 앞두고 엄마의 낡은 한복대신 내 한복을 가지게 되길 기대했을 때, 그리고 자라며 몇 번씩 마주치는 입학과 졸업이라는 행사 때에도.


 몇몇 일들은 정말로 돈과 시간이 없어서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은 채 말했을 터이다. 하지만 몇몇의 다른 일들은...


 단호하게 말하는 엄마 앞에서 심하게 떼를 쓰거나 어떻게든 뜻을 이루겠다며 사고를 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사춘기의 반항심조차 사치였던 집안 분위기에서 내 순종은 낡은 장판 한 구석 얼룩 마냥 당연한 것이었기에. 단지, 하고 싶은 건 뭐든 가능하고 굳이 하고 싶어하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주는 엄마 앞에서 뭐하나 욕심 부릴 일 없던 남동생을 지켜보며 마음 속 억울함만 켜켜이 쌓여갔을 뿐.






억울함


 쌓이긴 쉬운데 해소되긴 어려운 이 감정이 문제라고 했다. 거기에 엄마가 기질적으로 가지고 있던 불안과 기저에 깔려있는 우울을 섞어 짜잔하고 생겨난 것이 바로 피해망상이라는 정신질환.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바로 떠오른 것은 이 질환을 앓고 있는 엄마의 억울함이 아니라 그걸 지켜보는 내 억울함이었다. 자라면서 숱하게 억울함을 쌓아올려 마음까지 아프게 된 엄마는 왜 그 억울함을 나에게까지 물려주었나. 해소하지 못하고 쌓아둔 내 억울함도 세월에 천천히 썩히면 엄마와 같은 질환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엄마는 왜. 왜 엄마는.


동조하지는 말되 공감은 해 주어라. 현재의 상태를 안쓰럽게 여기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주겠다는 열린 태도로 엄마를 대해라.


 의사 선생님이 몇 번에 걸쳐 강조한 대응책은 나에게 엄마를 향해 끝없는 관용을 베풀기를 강요한다. 나는 그저 의사 선생님의 지침에 따라 엄마의 아무 말을 경청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지 묻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엄마는 그저 당신이 원하는 바를 군말없이 다 따라주는 딸의 모습에 신이 나 있다. 그래서 더 자주 찾고 더 무게를 실어 기대려 하고...


 엄마를 대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속으로 되뇌이는 말이 늘어난다. '엄마, 근데 그때 나한테는 왜 그랬어?', '엄마, 엄마가 애지중지 키운 동생은 두고 왜 나한테 기대려고 해?', '엄마, 나는 아직 엄마가 미워 그리고 그래서 괴로워'.


 내 마음 속에도 억울함이 켜켜이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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