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센서가 민감한 아기를 품에 안은 채로 쇼파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는다. 아기가 잠든 시간에는 꼼짝을 할 수 없기에 무료한 시간을 폭풍검색과 커뮤니티 눈팅으로 때우다 리디북스에서 책을 몇 권 결제해서 보고있다.
무거운(?) 인문학 책을 읽기엔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어 가벼운 스릴러, 추리물 혹은 에세이 위주로 읽고 있는데,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엄청 집중해서 읽게되어 결과적으로 육아 중 읽기에는 부적합. 육아를 잊고 읽게 될 만큼 흡입력이 강한 소설이란 뜻이다.
살인범의 자식으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라온 주인공에게 어느 날 7년 전 살인이 있던 밤에 대한 진실이 담긴 우편이 도착하며 시작되는 소설, 7년의 밤.
완전한 선인은 없지만 완전한 악인은 있는 인물 구성으로 캐릭터와 배경에 대한 묘사가 집요할 정도로 자세하여 현장감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완전한 선인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그랬는지 생계에 급급한 소시민적 상황의 주인공 엄마를 악착같고 짜증나는 여자로만 묘사하고 있다는 것과 그녀가 소설 속에서 서사를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여성 등장인물 임에도 퇴장이 (이야기의 구성을 감안하고서도) 허무하게 처리되었다는 점. 그 외의 여성 등장인물도 수동적 여성상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
자고 일어나 보니 잔인하게 살해당한 엄마와 단 둘이 집안에 남겨져 있는 상황. 잠들기 전의 기억이 없는 주인공이 기억을 찾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소설, 종의 기원.
제목에서 결과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데다 중반부터 주인공이 '일반적'이진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상태에서 스토리를 읽게 됨에도 주인공 1인칭 시점 서사여서 그런지 어느새 주인공이 상황을 잘 모면할 수 있기를 감정이입하여 읽게 된다.
충격적 반전이나 큰 사건(살인이 이미 큰 사건이지만;)이 없이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 하지만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했음에도 결말이 약간 찝찌름? 뜨뜻미지근? 한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