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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저녁 May 26. 2017

인생의 허들

다르게 넘을 궁리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었다. 정확히는 누구보단 평범하면서도 누구와는 다르게 살고 싶었더랬다.

그래서 광고쟁이가 되어야지 했다. 학창시절 우연히 본 잡지에서 심금을 울리는 인쇄광고를 발견하고 광고인의 길을 걷기로 했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가져다 붙였지만 솔직히는 그냥 뽀대나는 직업 같아서였다.

 광고학과에 진학해 업계에 발을 담가보고 나서야 알았다. '다르다'의 정의가 달랐다는 걸. 내가 만난 광고쟁이들이 하나같이 남들과 다르긴 했다. 똘끼와 비범을 넘나드는 뭐 그런식으로...? 광고한다는 사람들은 빡빡머리 아니면 레게머리, 찢어진 청바지에 희거나 검은 브이넥 티, 치렁한 귀걸이를 한쪽에만 걸고 딱정벌레 차를 주로 타고 다니던...머 그런 시절 얘기다. 


 배워먹은 도둑질을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는 다른 직업을 택해야했다. 선택할 수 있는 분야 중 가장 있어보였던 영상제작 쪽으로 들어갔다. pd150이니 vx2000이니 하는 장비들을 들고 다니며 촬영 나왔다고 폼을 잡기도 하고 디코딩이니 컴파일링이니 전문용어 잔뜩 써가며 프리미어를 붙잡고 밤을 새기도 하면서 남들과 다르다는 기분에 흠뻑 빠져 살았다. 촬영나가면 pd님 작가님 소리 듣고 가끔은 연예인도 보고 '이야 땡 잡았다. 이 길이 딱 내길이다.' 하며 신이 나서 다녔다. 철이 없었지...신성한 편집기에 발을 올리고 잘 만큼 짬밥이 차면서 남들과 다르다는 만족감이 박봉과 과도한 업무량을 이겨내지 못하게 되었다. 마침 일련의 뒤통수 맞는 사건들이 터지며 미련없이 손을 털었다. 


 그 다음으로 택한 직업은 IT 쪽 기획직군. 박봉에 업무량에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정신을 덜 차렸던가 보다. 그나마, 영상 쪽은 친구들과 직군에 대한 공감대가 낮아 하소연할 길이 없었는데 IT 쪽은 이리저리 걸쳐 있는 친구들이 많아 하소연은 실컷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공공의 적 '갑'님께서 계시니 함께 일하는 직원들끼리 똘똘 뭉칠 수 있어 어찌어찌 버티며 다닐 수 있었지.




 직업뿐만아니라 일상에서도 다르고자 했다. 이십대 중반을 넘기며부터 가정을 꾸릴 자신이 없어 결혼은 질색이라며 독신주의를 외치고 다녔고, 결혼할 생각은 없으나 연애는 마음껏 하겠다며 자유연애주의자를 자칭했다. 짧은 썸, 짧은 연애. 나 좋다는 사람은 막지 않았고 만나보니 싫다하면 쿨하게 헤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제일 가까이 붙어 다니던 친구 녀석이 날 여자로 보는 거 아닌가 싶어졌다. 한 6개월을 지켜보다 보니 '아 이녀석 진짜 날 좋아하나봐' 하는 확신이 생겼다. 고백하면 뭐라고 해야 할 지 고민이 되는데 정작 이녀석은 고백은 안하고 헬리콥터 마냥 주변만 왱왱 맴돌았다. 주위에선 다 눈치채고들 호들갑인데 혼자만 아무도 모르는 줄 알고 본인 역시 아닌척 모르는척 하고 다녔다. 신경쓰이고 답답해서 확 먼저 덮쳐버렸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6년을 연애했다. 이잉? 난 자유연애주의자였는데, 어느새 긴 시간 한 남자만 만나는 지고지순한 연애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결혼생각은 둘 다 없어서 이렇게 쭉 연애만 하자 했다. 그래서 길게 연애했는지도 모르겠다. 

말수가 워낙 적어 도통 속을 모르겠는 것도 한 몫했다. 6년을 만났는데 입을 열 때마다 늘 새로우니 연애가 지겨울리가...

 그런데 어느 날, 이 남자가 프로포즈를 했다. 연애하는 동안 꽃다발은 커녕 꽃 한송이도 준 적 없는 남자가 무려 백화점에서 거금을 들여 포장을 한 프로포즈 선물을 들고 직접 쓴 편지를 줄줄줄 읽었다. 프로포즈 선물은 신형 아이패드였다. 왠만한 이벤트를 다 받아본 내 인생에서 이것만큼 서프라이즈한 선물이 없었다.


 그렇게 결혼을 했다. 

결혼 안할거라는 내 말을 철썩같이 믿었던 친구들은 배신감을 느껴했다. 미안하지만 어쩌겠니, 프로포즈를 신형 아이패드로 하는데...결혼을 안할 수가 없잖아. 그 와중에 남들과 똑같은 결혼은 하지 않겠다며 한옥 레스토랑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 나는 결혼 3년차, 주부 1년차, 임산 16주차 경력단절여성이다. 

누구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이십대를 그렇게 아둥바둥 살았는데 삼십대 중반에 도착하니 흔하고도 흔한 가정주부가 되어있다니...거기다 무려 '고령' 임산부라 나라에서 기형아 검사도 할인해 준다. 아이 씐나....


 진학, 취업, 이직, 연애, 결혼, 그리고 이제 임신과 출산. 

인생 레이스 구비구비 만나는 허들을 넘을 때 마다 폼나게 넘어야겠다며 들이댔지만 깨지고 구르기가 매번이다. 그래도 임신과 출산 이번만큼은 단단히 대비해서 넘어지지 말자 했는데, 요이땅하고 출발하기도 전에 신발끈이 풀려 넘어져버렸다. 넘어진게 서럽긴 하지만 출발한지 얼마 안되었으니 만회할 수 있어! 라고 기운차게 일어나 보니 앞에 보이는 허들이 첩첩산중이라 당장 다음 허들인 '재취업'이 눈에 걸린다. 


 그래도 어쩌랴 인생 레이스에 빠꾸는 없다! 라고 하기엔 갈 길이 멀어 한숨이 나고, 마냥 주저앉아 있자니 길이 무빙워크로 되어있어 자동으로 다가오는 허들을 피할 수가 없네? 


 허들 다리 한 쪽을 붙잡고 목놓아 울면서도 한 편으론 어떻게든 다르게 넘어 볼 궁리를 한다. 

그래, 아직 6개월 남아쓰. 재취업 활동까지는 최소한 1년 6개월이 남은거야. 궁리하고 또 궁리해봐야지. 그러다 안되면 나라에 하소연이라도 해봐야겠다.


'경력단절여성에게도 양질의 일자리를 주세요. 

육아 걱정없이 일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가사노동, 돌봄노동의 가치상승에 앞장서주세요.

그래서 인생의 허들 좀 폼나게 넘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흥~페이스북에 '좋아요'나 누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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