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육아휴직 이야기 #19
예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가끔 박물관이나 과학관 같은 곳을 가면 엄마 없이 아빠들만 아이들을 데리고 견학을 와 역사 얘기도 해주고, 과학 이론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 아빠들이 있다는 것을... 몇 번 듣기만 했고 실제로 주변에 그렇게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아빠가 자기 아이들만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경우는 종종 봤다. 하지만 그룹으로 다닌다는 것 정말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아빠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여행을 가보고 싶었다. 아쉽게 난 결혼을 일찍 한 편이라 친구들 중에 우리 아이 나이에 맞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집이 없어 시도조차 못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와이프가 아이 친구 엄마들 모임에서 내가 가보고 싶어 한단 얘기를 꺼내 줬고, 아빠들에게 이 얘기가 전달이 됐다.
난 당연히 아빠들만 간다고 하면 다들 안 가실 거라 생각했다. 이번에 네 명이 모이게 됐는데, 그중 딸아이 아빠 둘은 평생 아이랑 단둘이 어디를 가 본 적이 없다고 하신다. 이러니 선뜻 가겠단 마음을 먹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아이들끼리 친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선물하고 싶어 하는 멋진 아빠들이라 결심하신 것 같다.
며칠 전, 우리 모임의 조촐한 발대식을 진행했다. 뭐 거창하진 않고, 아이들 재우고 밤늦게 나와 아빠들끼리 맥주 한잔 하는 정도. 사실, 가족 모임은 해봤지만 이렇게 밖에서 아빠들끼리 만난 것도 처음이었다. 그나마 어린이집부터 같이 보낸 사이다 보니 친밀감은 어느 정도 있었고, 비슷한 환경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여러 얘기들이 오고 갔지만 제일 좋았던 부분은 이번 여행에 대한 아빠들의 속마음을 들었다는 부분이다. 한 아빠는 평소 여러 체험을 시켜주지만 아무래도 첫째에게 많이 해주고, 둘째에게는 소홀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커 결심을 하셨다고 한다. 두 번째 아빠는 최근 둘째가 생겨 첫째에게 소홀한 마음과 한 번도 아빠랑 둘이 시간을 보낸 적이 없어 용기를 냈다고 하셨다. 마지막 아빠는 사실, 남들 다 하는데 본인만 안 하기 조금 그래서 이기도 하고, 역시나 딸과 둘이 지내본 적이 없어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고 하신다.
첫 번째 여행지는 경주로 정했다. 처음이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아빠들보다는 경험이 조금 있는 내가 여행 계획을 세웠다. 아빠와의 여행은 재밌어야 재밌어야 하고, 배우는 것도 있어야겠고, 여러 체험도 해보면 좋을 것이라 생각해, 아빠와 경주빵 만들기, 아빠와 루지 타기, 어린이 박물관 및 첨성대 관람을 통한 역사 체험 정도로 계획을 세웠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마 여행을 다녀와 다시 적지 않을까 싶다.
엄마 없이 떠난다는 게 아무래도 두려운 부분이 많다. 아빠나 아이들이나 다들 생전 처음 겪는 상황이고, 처음 겪는 감정일 테고, 처음 보는 모습들이라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할 수도 있다. 내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지만 다른 친구들과의 사회생활 속에서 안 좋은 모습이 보일 수도 있고, 아이들이 보기에도 아빠로 인해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런 같이 떠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서로가 서로에게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한다.
발대식에서 다음에는 캠핑도 가고, 바다낚시도 가고, 별 보러 가자 같은 얘기들도 오고 갔다. (신기하게 한 분은 캠핑 전문가, 한 분은 낚시 전문가였다.) 과연 우리 아빠들의 여행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아니면 계속 이어나가 좋은 경험들을 쌓아 나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