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육아휴직 이야기 #20
네, 사랑하는 제 와이프가 갔습니다. 3박 4일 휴가를요. 저랑 아이 둘만 남겨둔 채로요.
물론 도망간 건 아니고요, 제가 호기롭게 다녀와도 좋다고 얘길 했죠. 사실 제가 휴직을 하면 와이프가 한 달 정도는 쉬고 오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둘 다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걸 잘 알죠. 그래서 다음 주에 시작될 딸아이의 방학 전, 아주 짧게 여행을 떠났습니다.
와이프의 휴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아이 30개월 정도, 1박 2일로 떠났던 휴가가 처음이었어요. 제가 해외 근무를 시작하며, 몇 개월간 이어진 독박 육아로부터 와이프를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해 주고 싶어 시작했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멀리 생각하면 나를 위한 거죠. 충분히 충전이 된 와이프는 저나 아이를 대할 때 여유가 많이 생겨 저도 지내는 게 편해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아이는 엄마 보고 싶다고 울고, 요리는 다 태워서 아이 배탈 나게 만들고, 아이는 또 울고, 저는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진짜 매 순간 와이프가 너무 보고 싶단 생각밖에 안 했던 것 같고, 와이프에 대한 존경심, 고마움, 그리고 사랑이 더 커지는 시간이었어요. 물론 아이랑도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었지요.
그렇게 몇 번 정도 아이와 둘만 있는 시간을 더 만들다 보니 이제는 둘이서만 있는 것도 꽤나 익숙해진 것 같아요. 휴직한 뒤로 계속해서 아침밥을 차리다 보니 스킬도 꽤 늘었고, 같이 노는 방법도 많이 터득했고, 재울 때도 요령이 꽤 생기는 것 같아요. 음, 아직 힘든 부분은 아침에 머리 묶는 것 정도? 이건 해도 해도 늘지 않아 오늘 아침엔 아이가 직접 묶고 가긴 했어요. 이제 아이가 9살이나 됐기도 하고, 저도 그만큼 아빠로서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요.
와이프는 여러 여행지를 보다가 해운대로 호캉스를 떠났습니다. 일단 장마철이라 계속 비가 내려 어디 돌아다니기도 어렵고, 와이프가 말하는 최고의 휴가는 조용히 혼자서 책 읽고, 넷플릭스 보고, 먹고, 걷고 정도라고 하더군요. 다행히 제가 그동안 열심히 출장 다니며 모아둔 호텔 마일리지로 해운대 해변이 보이는 호텔을 잡고 휴식을 취하러 떠났습니다. 예전만큼 많이... 불안하진 않습.. 아.. 그래도 조금은 불안합니다. 그래도 버텨봐야죠.
휴가는 '직장/학교/군대 따위의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일'이라고 네이버 사전에 나와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여기에 조금 더 보태서 진짜 휴가는 자신이 주 업으로 삼고 있는 곳에서 떠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 업이 회사면 회사에서 떠나서 쉬고, 가사면 집에서 떠나서 쉬어야죠. 그게 진짜 휴가죠. 그래서 가끔 이렇게 여건이 되면 와이프를 보내곤 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아빠가 있다면, 용기 내서 엄마를 한 번만 내보내 보세요. 처음에는 1박 2일 정도, 여유가 생기면 하루씩 늘리다 보면 어느덧 달라진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이 글을 적으며 예전 와이프 휴가 떠난 글들을 다시 봤는데 아주 힘든 시간들을 보냈더라고요 ㅋㅋㅋ 신기한 건 회를 거듭할수록,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제 글에서 여유가 보이더라고요 ㅋㅋ 나중에 와이프 휴가 글 몰아보기 한 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게 바로 꾸준히 글쓰기의 큰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