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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더필즈 Apr 07. 2021

거기 안에 약사가 몇 명인데?

투석실 예민보스 할아버지가 갑자기 물어보셨다.

8년도 더 된 일인데,  

아직도 성함과 얼굴과 표정, 평소의 옷차림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다.




나는 당시 지역의 종합병원 안에 있는 약제실에 근무하고 있었다. 300병상이 조금 넘는 규모의 병원이었다. 병원 내의 약국에서는 입원 환자가 매일 병동에서 복용할 약, 퇴원 후 복용할 약, 응급실로 내원한 환자의 약 등을 주로 조제하고, 원내에서 사용하는 항암제와 마약을 포함, 각종 주사제를 관리하고 불출한다. 또한 외래 진료 환자이지만 특별한 사유가 있어 원내에서 약을 수령해 가야 하는 경우에도 해당 약을 조제한다. 신경정신과 환자의 약이나, 교도소 수감 중인 환자의 약 등도 이에 해당한다.


 내가 근무했던 그 병원은 신장내과와 함께 투석센터(인공신장실, AK(artificial kidney center))를 갖추고 있었다. 우리 몸에는 신장(콩팥)이 존재해 몸의 각종 노폐물을 밖으로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신장의 기능이 거의 완전히 망가지게 되면 각종 독소와 노폐물이 몸 밖으로 빠지지 않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노폐물을 빼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을 '투석'이라고 한다. 투석은 그 방법에 따라 크게 혈액투석, 복막투석으로 나뉜다. 혈액투석은 몸에서 피를 빠르게 빼내어 노폐물을 걸러낸 다음 다시 깨끗한 피를 넣어주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는데, 반드시 병원에서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환자들은 주 3회 가량 병원을 방문해 1회 4시간씩의 기나긴 투석을 받아야 한다.



혈액투석실 모습. 출처: Medical Observer (monews.co.kr)


투석환자들의 경우, 평상시 병원 투석실 밖에서는 몸의 필터가 완전히 고장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몸으로 뭐가 들어오든 시간이 지나면 독으로 작용할  있다. 음식도, 약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식이조절도 매우 엄격하게 해야 하고, 약제 복용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 몸에 인이 쌓이지 않도록 단백질도 제한해서 먹어야 한다.  와중에  챙겨먹어야 하는 약은 많다. 신부전, 즉 신장 기능이 망가진 상태는 보통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만성질환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혈압/당뇨/고지혈증약을 복용하고 있고, 몸에 '' 쌓이지 않도록 ' 결합제' 계속해서 복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약들은 크기가 엄청 커서 보기만 해도 가 부른 느낌이다.


투석환자들이 복용하는 인 결합제 중 하나인 '렌벨라'정. 가로축이 2 cm가 조금 넘는다고 보면 된다.


환자의 신장 기능에 따라 복용해야 하는 약의 종류나 용량도 빈번하게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처방을 길게 내지 않고 짧게 자주 내는 편이다. 보통 1주일 단위로 약을 드렸던 것 같다. 약의 용량이 조금 잘못 들어가더라도 일반인들이라면 몸이 자연스럽게 견뎌내지만, 신장이 망가진 환자 분들에게는 매우 위중한 상황이 될 수 있어 더욱 엄격하고 까다롭게 약을 검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투석환자분들이 복용할 약이 모두 조제되면, 약은 여러 번 검수 과정을 거쳐 투석실로 한꺼번에 배송되었고 투석이 끝나신 환자분들은 투석실에서 바로 본인의 약을 수령해 귀가하곤 하셨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끔 직접 약제실로 오셔서 약을 수령해 가시는 분들이 계셨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기억하는 그 할아버지가, 그 중 한 분이셨다.




 투석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는 가만히 누워있으면 그만일 것 같지만, 몸에서 피가 들락날락하는 과정이니만큼 그 긴시간 투석을 받고 나면 환자는 진이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투석을 마치고 온 환자 분을 대하는 과정은 언제나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약에 대한 설명을 드리긴 드려야 하는데, 환자분들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은 데다가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를 피곤해하셔서, 때로는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 다행이고, 매번 쌓인 화와 짜증을 약국에 와서 푸는 것 같은 분들도 계셨다. 더 성내시기 전에 빨리 복약지도와 투약을 끝내야겠다는 조급함과 차근차근 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느끼는 부담감이 크게 자리 잡아, 투석환자분들께 약을 드려야 하는 시간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유난히 짜증이 많으셨다. 날카롭기로는 우리 병원 단골 환자분들 중 최고로 유명하셨던 것 같다. 투석실 선생님들과 싸우시는 광경도 많이 포착되었다고 했다. 투석이 끝나고 나면 기운이 없으실 텐데도 목소리가 어찌나 크신지, 약을 타기 위해 대기하시는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투약구에 대고 쩌렁쩌렁 고함을 지르셔서 늘 마음을 '쫄리게' 만들곤 하셨다. 할아버지의 약을 조제해야 한다는 전산 알림이 모니터에 뜨면 다들 바짝 긴장한 채 조제를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투약구에서 할아버지에게 약을 전달해 드리는 일은 거의 내 몫이 되었다. 이걸 왜 여기다 담았어, 이거 같이 넣어달라고 내가 몇 번을 얘기했어. 아니 조제가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뭐? 아 빨리 약이나 줘. 투덜투덜. 처음엔 잘못도 없이 혼나는 기분이 들어 눈물이 글썽여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거의 매주 또는 격주로 할아버지를 보다 보니 그냥, 잘 아는 할아버지가 된 느낌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기에 내겐 할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는데, 할아버지들이란 원래 말을 저렇게 툭툭 하시는가 보다 싶을 정도로 그 할아버지의 말투와 행동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우연히 옛날 시트콤을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을 보다 알았는데,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나오는 노구(신구) 할아버지의 말투가 딱 그 말투였다!)


아니 왜 약이 이렇게 늦게 나와??

어느새 나는 할아버지가 앞에서 짜증을 내시든 화를 내시든 고함을 지르시든 그냥 웃으면서 OOO님! 오셨어요? 아이고, 많이 기다리셨구나. 어떡해요. 근데 저희가 꼼꼼하게 잘 보고 해 드리느라 그래요. 오늘은 좀 어떠셨어요? 들어가세요 아버님 ~ 능청을 떨 수 있을 만큼 할아버지에게 적응하게 되었다. 어느새, 할아버지가 2주 이상 안 보이시기라도 하면 걱정이 될 정도로 할아버지에게 정이 들었다. 툴툴대는 할아버지가 안 보이시면 뭔가 맘이 허전한 게, 꼭 이번 주 할일을 다 못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병동들 지나가는 길에 들러 할아버지 오늘 안 오셨어요? 투석실 선생님께 물어보는 일도 있었다.




그 병원에 2년 조금 넘게 근무했을 무렵, 나는 밴드 활동에 정신이 나가 ('홍대'병에 걸렸었다) 서울에 있는 회사를 다니겠답시고 병원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를 한 주 정도 남겨 놓은 어느 날, 그 날도 그 할아버지가 약을 타러 오셨다. 여전히 뚱한 표정이셨는데, 다음 주면 할아버지를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열심히 웃으며 약을 드리고 돌아서려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그 뚱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물어보셨다.


"아니, 근데 약사선생 이름이 뭐야?"

"아, 저 김** 약사에요!"

"김, 뭐라고?"

"김** 약사요~" (명찰을 보여 드림)

"거 이름 참 희한하네."


그쵸? 하하. 할아버지를 한 두 번 봤을 때 할아버지가 그렇게 물어보셨다면 고객의 소리함에 무슨 투서를 하시려고 이름을 물어보시나 싶었을 텐데, 이제는 할아버지가 친근감으로 그렇게 물어보신다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다시 또 퉁명스럽게 물어보셨다.


"거기 안에 약사가 몇명인데?"

"저희 이 안에 네 명 있어요."

"넷이나 있어? 근데도 이렇게 오래 걸려?"


아, 그럼 그렇지. 또 약 늦게 나온다는 소리 하시려고 그랬구만. 나는 실없이 웃었다. OOO님, 저 다음 주면 여기 없어요, 라고 말할까 싶었지만, 할아버지는 거기에도 퉁명스럽게 "근데, 뭐?" 하실 것 같아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말을 꾹꾹 눌렀다. 안녕히 가세요, 인사만 했다. 방금 드린 인사가 마지막 인사일 것 같아, 괜시리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한 5분 지났을까?

마지막 인사라고 슬퍼했던 게 민망하게, 투약구 쪽에서 다시 쩌렁쩌렁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약사 어디갔어?"


내가 약을 뭘 잘못 드렸나? 겁을 먹고 후다닥 투약구로 달려나갔는데, 할아버지가 그 좁은 투약구 아크릴판 구멍 안으로 검은 봉투를 쑥 내미셨다. "나눠 먹어. 내가 맨날, 아주 고마워."


"할아버지....!"


"수고하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말문이 막혀 버린 나는, 쿨하게 손을 흔드시고 뒤돌아 걸어가시는 할아버지 등에 대고 그제서야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를 외쳤다. 나는 할아버지의 감색 자켓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병원 밖으로 나서신 후에야 건네 주신 검은 봉투 안을 들여다 보니, 당시 신상이던 편의점 커피가 네 개 담겨 있었다. 약국에 있던 선생님들 모두 이 커피는 아까워서 못 먹겠다며, 할아버지가 주신 의외의 선물에 크게 감동받아 하셨다. 그날따라 커피 맛이 아주 달고 진했다.


그 때는 내가 할아버지한테 정말 잘 응대해드리고 복약지도도 똑부러지게 잘 하고 그래서 고마우셨나보다, 하면서 내심 뿌듯한 것도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의 눈에는 스물 넷 어찌보면 이제 막 사회에 기어나온 어린애가 멋모르고 재잘재잘, 어른스러운 척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설프고 귀엽게 보이셨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제야 그 상황이 조금 더 어른의 시각에서 보인다.


할아버지는 그 후에도 날 기억해 주셨을까? 가끔 편의점에서 그 커피를 보면 그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그 때 할아버지에게 단련된 덕분에 지금은 약국에 어떤 예민한 어르신이 오셔도 웬만해선 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어르신 환자 분들께서 기분좋은 상태이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보니, 지치는 진료 마지막 단계인 약국에서 조금이나마 밝은 기분으로 귀가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환자 분들을 대하려 노력한다. 그럼 그때 그 할아버지께 그랬듯이 조금이나마 내 마음과 정성이 가 닿지 않을까 싶어서다.



예민보스 할아버지가 주고 가신 커피 네 잔. 2013년.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분들 다섯 명 중 한 명은 우울증을 동반하고 있다(Adv Chronic Kidney Dis 2007;14:328-334). 거의 평생, 주 3회 4시간씩 치러야 하는 투석치료에 대한 심리적/경제적 부담과, 여러가지 식이 제한과 약 복용으로 인한 스트레스, 사회적 활동 제한으로 인한 자존감 저하, 합병증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 등이 그 원인이다. 그러나 약제 복용에 제한이 있는 만큼 항우울제 투여도 신중하게 실시되어야 하다 보니, 투석환자가 동반한 우울증의 개선은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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