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보다 물약을 더 싫어한다.
아 이거 집에 엄청 많이 쌓여 있는데..이거 빼고 가져가면 안 될까요?
오늘 하루에도 다섯 번은 들은 말이다. 진짜다. 저게 무슨 말이냐면,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중에서, 시럽제를 그렇게도 드시기 싫어하는 어른들의 투정이다. 맛이 없어서 못 삼키시겠다는 귀여운 투정.
하도 반찬투정(?)을 하시는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해 보고자, 약국장님들의 허락을 받고 아예 시럽마다 직접 다 뜯어서 맛을 보기도 했다. 웬만하면 다 먹을 만하다. 예를 들어 기침 시럽의 경우 코푸 종류, 시네츄라는 힘들긴 해도 먹을 만하고, 프리비투스는 딸기향으로 맛있는 편이다. 알마겔, 겔포스, 트리겔 등 짜먹는 제산제 류는 묽은 치약을 먹는 느낌이라 좀 힘들지만, 지사제 스멕타라든가 변비약 듀파락 같은 경우는 맛이 좋다. 듀파락은 사실 락툴로오즈라는 올리고당 성분이기 때문에 꿀물이나 다름없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이 먹는 시럽은 다 괜찮은 편이다. 알약을 못 먹는 아가들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항생제 시럽이 제일 맛이 없다.
그럼에도 맛이 없어서 못 드시겠다는 분은 어르고 달래고 잘 설득해서 며칠만이라도 드셔보시게 한다. 그래야 빨리 증상 떨어지고 편해진다고. 그럼 보통은 "알았어...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시면 내가 한번 먹어보께...." 하고 못 이기는 척 집어 가신다. 아유 이쁘다 하고 궁디팡팡 해 드리고 싶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러나 저러나 죽어도 못 드시겠다고 하는 분들한테는 처방 변경 절차를 도와 드린다.
어른이 되어도 약이 써서 먹기 싫은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다 큰 어른들의 투정이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