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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 이야기하기 : 경험

마음노트

by 보미



심리상담 이야기하기


3) 경험





세 번째로 다룰 키워드는 경험입니다.


이쯤되면 제가 정서중심치료를 기반으로 상담하는 상담자라는 것은 모두 잘 아실 테죠. 정서중심치료(Emotion Focused Therapy)는 과정-경험 중심 치료(Process-Experiential Therapy)라고도 불리는데, 그만큼 상담에서 "경험"이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집니다.


그렇지만 상담을 찾는 많은 분들이 상담에서 '경험한다'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모호하게 느끼시곤 합니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경험'이라는 말을 생각보다 자주 쓰지 않아요. 내 감정을 깊이 이야기할 일이 많지 않은 것처럼요.


나 지금 이런 걸 느꼈어. 이런 걸 경험했어.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은 드물죠.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많지 않고요. '그게 어땠어?'라는 질문을 받아도 '괜찮았어.' '좋았어.' '별로였어.' 정도의 짧은 답변이 대부분입니다. 그게 나에게 어떤 면에서 좋았는지, 그 순간 나는 어떤 걸 경험했는지, 그래서 지금은 어떤 것들이 달라졌는지를 자세히 이야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죠.


그렇다면 상담에서 '경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서중심치료에서 말하는 경험은 단순한 사건이나 기억이 아닙니다.

특정 순간에 내가 무엇을 알아차리고, 어떻게 느끼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지까지 포함하는 심리적 과정이에요.


즉,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보다, 그 일이 내 안에서 어떻게 다가왔는지가 더 중요한 거죠.



상담에서 "그 일이 00님께 어떻게 느껴졌나요?"라는 질문을 드릴 때가 있는데, 그건 단순히 사실을 묻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듣고 싶어서 드리는 질문이에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기보다 객관적인 정보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런 정보도 중요하지만, 상담에서는 내가 어떻게 느끼고 경험했는지가 정말 중요하게 여겨져요.



그 일이 나에게 어떻게 기억되는지,

그 일을 떠올리면 어떤 감정과 생각이 드는지,

거기서 나는 어떤 의미를 찾게 되었는지,

어떻게 행동하고 싶었는지...



이렇게 상담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감정을 다룰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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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중심치료에서는 경험을 "experience"라고 하기보다 "experiencing"이라는 표현을 더 선호해요.

그 이유는, 경험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흐르는 과정이기 때문이에요.



경험은 살아있는 과정입니다.

그 안에 머무르고, 깊이 접촉하다 보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이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감정이 떠오르기도 하고, 늘 나를 괴롭히던 감정이 새롭게 경험되면서 해소되기도 하죠.


그 과정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 변화해요.


예전에는 스스로가 한심하게만 느껴지고,

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지 답답했고,

이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면,

그 경험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순간, 변화가 시작돼요.

과거의 내 행동과 감정이 이해되기 시작하고, 지금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더 분명해지며, 감정을 조절하는 힘이 길러지기도 하죠.


이런 변화를 돕기 위해 상담자는 여러분과 함께 머물며, 여러분이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안전하게 탐색할 수 있도록 안내할 거예요.




그럼 상담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경험에 접촉하게 될까요?


우선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의 이야기요.

상담자는 여러분이 살아온 이야기를 편안하게 풀어놓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겪었던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살펴보고, 그 안에 숨겨진 감정과 어떻게 접촉하는지가 중요해요.


상담을 받아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수도 있어요.

상담 안에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다 보면,

이전에는 자각하지 못했던 감정이나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요.

지금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감정을 덜 고통스럽게 다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상담자는 여러분이 그런 감정들과 만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여러분의 경험을 경청하고, 공감하고, 타당화하며, 그 감정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도록 함께 탐색해요.

그렇게 경험에 접촉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상담 안에서뿐만 아니라 상담 밖에서도 자신의 경험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변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말로 하는 건 정말 쉽게 느껴지지만,

사실 경험에 접촉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죠.


많은 분들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머무르는 것을 어려워하세요.

특히 고통스러운 경험을 피하고 외면하는 것이 더 익숙한 분들이라면 더욱 그렇죠.

익숙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내 경험을 이야기하는 게 쉬워지고, 감정에 집중하기보다 평가하고 판단하는 말을 하기가 더 쉬워져요. 그리고 그럴수록, 나는 경험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상담은 익숙했던 방식을 떠나,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경험을 피하게 되는 이유는,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두렵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 감정에 압도될까 봐,

또는 한 번도 나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타당화받아 본 적이 없어서,

그 경험을 마주하는 것이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과거에 소중한 사람이 나의 경험을 평가하고 판단했다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도 내 경험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수도 있죠.


상담에서는 그 두려움마저도 함께 다룰 거예요.

이전에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주고,

그 감정과 안전하게 마주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할 수 있지만,

조금씩 천천히 익숙해지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의 경험과 접촉하는 방법을 배워갈 수 있어요.



경험은 흐르는 과정이에요.

우리가 그 안에 머물고 충분히 접촉할 때, 변화는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그 과정이 어렵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상담자가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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